2011년 3월 7일자 세계일보 SW 칼럼에 필자는 '막사발실크로드 대장정은 계속된다'라고 썼다.
'한국에는 지금 수많은 문화예술 인재들이 갈 곳을 모르고 잠자고 있다. 지인지감(知人之鑑), 사람을 잘 찿아서 요소요소에 배치하는 일이다. 쉬고 있는 예술인을 일을 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도 국내에 머무르면 우물안 개구리이다.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터키 하제테페미술대와 문화예술 교류를 위한 MOU를 체결하려 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먼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서 수많은 문물이 동서양으로 오고 갔듯이 이제는 문화예술의 첨병들을 키우는 전략적 산업이 필요한 시대이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썪게 마련이고 잘 흐르는 물에 물고기를 놓아 두면 새로운 문화예술의 터전으로 가꿀 수 있다. 이러한 때에 올해에는 세계의 다리를 놓는 도자기 축제 행사-한국(오산), 중국(치박)을 거쳐 터키(앙카라)로 3개국을 잇는 막사발 실크로드2011의 문화적 욕구가 기대된다.'
이러한 막사발실크로드 대장정은 문화예술을 위한 인류 문명 공동체의 분명한 노선이다.
2024년 현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달리는 자전거가 정지하면 그걸로 끝이다.
막사발은 문화예술의 띠잇기를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끊임없는 기획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이때만해도 필자는 50대 초반이었고, 시간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막사발 대장정을 누군가가 이을 다음 세대들이 절실한 때다. 이데올로기 대결이 아닌, 세계를 아름다운 문화예술로 잇는 공동선에 접근해야 한다.
절박한 심정! 좀 늦었지만, 색 바랜 사진들을 조합해서 글을 정리하려 한다.
2005년도 중국 산둥성 치박시 태산도자기 회사에 막사발 장작가마를 축조할 무렵에는 한국, 중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그리이스작가를 포함 유럽작가, 미국작가 등이 대거 참여하는 본격적인 '치박막사발장작가마 축제'가 중국산둥성 치박시에서 태동할 무렵이었다 .
2005년 6월 인천항에서 청도로 가는 배를 타고 찍었던 사진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 배에는 한국도예가 박국현, 신용주, 필자, 캐나다 도예가 마이클 오스본 등과 함께 승선했다. 청도항에 도착한 일행은 치박에서 마중나온 리지웬 중국 대사의 차량으로 치박시까지 무려 6시간을 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을 거쳐 중국 산둥성 막사발 실크로로드의 첫삽을 뜨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산둥성 치박시에 있는 태산도자기 공장 한켠에는 한국형 막사발 장작가마를 축조하기 위해 가마터가 마련되었다.
막사발 장작가마 축제를 위한 가마축조 일행은 2005년 8월 본행사를 위해 쉴새 없이 한국형 막사발 장작가마를 만들어야만 했다.
막사발 장작가마 총길이는 약 20미터였는데 봉통, 첫째 칸, 둘째 칸, 세째 칸, 네째 칸, 다섯째 칸, 굴뚝 등이 포함되었다.
한국형 장작가마는 통상 등요 또는 오름가마, 칸가마라고 한다. 장작가마 맨 앞에 있는 것을 봉통이라 칭하며, 다음 칸을 첫째 칸, 둘째 칸이라 부른다. 보통 세칸 가마, 다섯칸 가마로 축조하는게 보통이다.
벌써 치박막사발 장작가마 축제(ZIBO CHINA INTERNATIONAL MACSABAL WOODFIRE FESTIVAL)가 20년이나 지나서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기억되는 것은 초기 당시에 중국 말을 통역하는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무척 애를 먹고 있던 차에 치박시장 길거리 노점에서 필자가 물건을 고르고 있었는데 산동이공대 영문과 여학생 ABBEY YAN이 영어로 말을 걸어 와서 반가웠다. 훗날 이 여학생을 앞장 세워 중국 도자대사 이지우엔과 함께 '치박막사발 장작가마 축제 2005'를 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