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여민동락(239)]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정준성 주필

'피는 건 오래여도 지는 건 잠시'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던가. 전국적으로 '개화 소식'이 천지간에 '낙화 소식'으로 넘쳐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란 시다. 

말미의 '녹음'이란 말이 성큼 와닿는 4월이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른 '낙화' 소식들로 분분하다.

4.10총선에서 '화려한 개화'를 꿈꿨던 많은 '무궁화 꽃' 들이 피기전 낙화의 아픔을  겪고 있어서다. 

토마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가 낯설지 않은 시절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봄비로 무딘 뿌리를 흔든다/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줬다/잊게 해주는 흰 눈으로 땅을 덮고/마른 알뿌리로 얼마간의 생명을 주었다.." 

희망을 노래하며 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 읊었을까, 

아이러니 하지만 어쨋든 올해는 서정과 낭만, 싱그러움이 모두 사라진 4월을 맞았다. 

비단 낙화의 아픔을 겪은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공간을 가로질러 봄볕이 따사롭고 연둣빛 새순을 내미는 신록이 상큼하지만 이를 느낄 겨를조차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서다.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혼돈의 급물살을 타고 있어 더 그렇다.

얼어붙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정치인들에게 약동과 변화를 일깨우는 유권자의 회초리가 누구에겐 잔인하게 누구에겐 충격으로 다가온 4월. 

하지만 힘든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는 서민들의 아픔과 비교나 될까. 

이같은 사정을 모르는듯 세월은 가고 있다. 여기저기 사방을 둘러봐도 여전히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시상도 피어난다. 그러면서 “꽃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중략)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이해인 수녀의 ‘4월의 시’도 여전히 소환된다.  절망속에 희망을 노래 할 수 있는 마음의 '쉼자리'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