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화자가 지금은 부재하는 아내와 지난 날 어느 장터에서 양말을 사던 추억을 회상하면서 시작하고, 이제 아내의 그 의사를 따르기로 하고 자신에게도 그렇게 바라며 시를 끝내는 것 같기는 한데, 확정하기는 어렵다.
오일장에서 아내가
지는 싸구려 양말을 고르고
내 것은 비싼 것을 고를 때
아내를 뿌리치고 열 켤레에 삼천 원하는
싸구려를 오늘까지 신고 다닌다.
아내는 떠나고 그 질긴 양말도 빵꾸가 나고
오일장에서 싸구려 양말을 고르는데
왠지 내 발이 가여워졌다.
86년 나를 업고 아무데나
진데 마른 데 없이 걸어온 발.
무늬가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말을 샀다
아침에 발을 깨끗하게 씻고 양말을 신으면서
그만 눈물이 났다, 부디 내발이여,
이제 좀 고급스러워지기를
- 「양말」/김종호
화자는 그 장날에 아내가 자기 양말은 ‘싸구려’를, 남편인 자신의 양말은 ‘비싼 것’을 사려 하자, 아내가 고맙기도 하면서도 구별이 오히려 부담되고, 자신에게서 말미암은 살림 형편 때문이겠기에 부끄럽기도 하며, 왜 꼭 그래야 하는지 짜증이 나기도 해, 좀 화를 내면서 기어코 자신의 양말로 ‘열 켤레에 삼천 원하는 싸구려’를 샀다. 더 말하고 싶지 않고 더 부끄럽기도 하지만 내심 싸기도 하여 그 구매를 결행하였을 것 같기도...
그런데, ‘아내는 떠나고 그 질긴 양말도 빵꾸가 나고’ 해서, 하는 수 없이 화자는 혼자 가서 그 ‘오일장에서 싸구려 양말을 고르’게 된다.
이하에서도 필자가 별로 해설할 대목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백지장도 맞들면 났다는 속담에 의지하여 하나마나한 해설을 계속해본다. 아니 다시 생각하니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진데 마른 데 없이 걸어온 발’은, [진데 마른 데 가리지 않고 아랑곳하지도 않고 걸어온 발]로 읽어야 하며, ‘무늬가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말을 샀다’는, [무늬가 있는 고급 양말을 샀다]고 읽지 말고, 말 그대로 ‘무늬가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말을 샀다’, 즉, [무늬가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싸구려’ 양말을 샀다]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화자는 ‘아침에 발을 깨끗하게 씻고 양말을 신으면서/그만 눈물이 났다, 부디 내발이여,/이제 좀 고급스러워지기를’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 ‘눈물’은 감상(感傷)이 아니다. 생활 지조의 일관된 지속을 한편 탄식하면서도 끝까지 견지하겠다는 의연한 의지의 발로. 그러니까 ‘눈물’은 바로 그러한 취지의 각오에서 파생되었으며, 두 시행은 반어에 가깝다. ‘그만 눈물이 났다, 부디 내발이여,/이제 좀 고급스러워지기를’이라고? 이는 자신의 발은 아무래도 고급해질 수 없기에 그저 고급처럼, 그 비슷하게 보이기를 바란다는 진담과 농담이 섞인 풍자이다.
간결하면서도 복잡 미묘하고,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독자의 참여를 촉진하면서 여운을 형성하는 자양이 있는 시이다. 인생과 자신의 삶을 관조한 나머지 여유가 배인 시선과 정조가 화자에게 내재해 있다. 그리고 시 말미에서 아내를 언급하지 않는데 자제에 해당하며, 그 ‘눈물’에는 ‘열 켤레에 삼천 원하는 싸구려’ 양말을 같이 신고 같이 산 아내에게 바치는 애정이 무심하지만 짙은 빛으로 담겨 있다. 이는 이미 직전 시행들, ‘무늬가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말을 샀다/아침에 발을 깨끗하게 씻고 양말을 신으면서’란 독백에 함축되어 있었다.
이 시는 그러니까 발 이야기이다. ‘발’은 화자 부부의 지난 삶의 행로와 족적의 환유이고, ‘양말’은 부부 사랑의 은유이면서 환유 ‘발’의 일부이고 또 그 제유이다.
사족 : 궁금하다. 지난 장날 그날 아내의 양말. 아내의 양말을 화자가 고집하여 ‘비싼 것’을 샀는지 아내가 고집한 대로 ‘싸구려’를 샀는지 너무 궁금하다. 아마 남편은 아내의 고집, 아니 아내의 사랑을 이기지 못했고, 아내는 결국 ‘싸구려’를 샀지 않았을까. 아무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