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수원엔 오래된 라일락 나무들이 숨어있다(상)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몇 년 전 수원문화원의 ‘수원, 역사속의 나무들’ 책을 쓰느라 수원시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을 만났다. 지정되거나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생태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나무들도 모두 걸어가서 확인했다.

걷다보니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래된 뽕나무도 만났고, 밤나무도, 라일락 거목도 발견했다. 그것도 늘 산책하던 성벽 안팎에서였다. 이렇게 수원의 오래된 나무와의 사랑에 빠졌다.

특히 수원 성안·성밖마을에 오래된 라일락 나무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수원시 인터넷 신문 e수원뉴스 칼럼에 “청맹(靑盲)이여, 어찌 이 오랜 라일락을 못 봤던 것일까?”라고 한탄했다.

라일락은 내가 좋아하는 봄꽃 중 매화, 목련꽃과 함께 윗줄에 선다.

라일락꽃. (사진=김우영)
라일락꽃. (사진=김우영)

여행작가 장태동은 지난 2019년 4월 이런 글을 한겨레신문에 발표했다.

“봄은 라일락꽃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꽃을 완성하는 향기, 생김새, 빛깔이 조화를 이룬 라일락꽃이 봄의 절정이다. 그로부터 봄은 깊어진다. 라일락꽃은 어느 집 담장 안, 골목 어귀, 길모퉁이에 피어난다. 무리 지어 피지 않는 라일락꽃은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꽃말 ‘첫사랑’처럼 아련하다.”

“봄은 라일락꽃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장태동의 글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조 수다스러운 입들이

 

껌처럼 자꾸 씹어내는

자잘한 얘기들로 해서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구나

 

햇빛 참 좋은 날의 골목 안

최씨네 양철 담장 곁

쓰레기통에

 

꼬마들이 던져 넣고 간

라일락 꽃가지.

-졸시 ‘4월’ 전문

 

스무 살 무렵 군대 가기 전 쓴 시다. 당시 매산동엔 고등학교 동창생 최영선과 이기영이 살았다. 모두 고교 시절 문학을 한답시고 세상 고민을 다 끌어안은 듯 찡그린 표정으로 소주를 마시던 친구들이다. 그들과 안주 없는 낮술을 한잔하고 흥얼흥얼 걷던 골목길, 꼬마 여자아이들이 갖고 놀다 쓰레기통에 버린 라일락꽃이 눈에 띄었다. 그 때 떠 오른 시상을 정리한 것이 위의 시 ‘4월’이다. 그리고 봄만 되면 어김없이 내 책상 위 물 컵엔 라일락 꽃 한 가지가 꽂힌다.

우리 이름으로는 ‘수수꽃다리’인데 참 예쁘고 정겹다. 라일락이란 이름도 감성적이긴 하다.

잘 알려진 고목은 대구시 소재 한옥카페 ‘라일락 뜨락 1956’에 있는 200년 정도 된 라일락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선생 생가 옆집을 개량한 이 카페에 있다.

서울 봉은사 법왕루 서쪽 종루 앞에 있는 라일락도 고목으로 보호되고 있다. 무려 250년이나 됐다는 나무다.

그런데 수원에 있는 라일락도 만만치 않다. 최근 사진가 이용창과 함께 수원시내, 특히 성 안팎으로 걸어 다니면서 십 수 그루의 오래된 라일락나무를 발견했다, 그중 한그루는 나무 밑둥 둘레가 자그마치 1m가 넘는다. 어째서 이 오래된 나무들이 이제야 내 눈에 띈 것일까?

그동안 화성만 바라보고 다녔다. 화성 성 밖의 억새꽃 장관에 감탄하고 달뜨는 용연과 방화수류정의 정취에 넋을 빼앗겼다. 봄이면 라일락 옆의 활짝 핀 목련꽃과 벚꽃에만 찬사를 보냈다.

화서문에서 팔달산 가는 쪽 언덕위에서 발견한 오래된 라일락 나무. (사진=김우영)
화서문에서 팔달산 가는 쪽 언덕위에서 발견한 오래된 라일락 나무. (사진=김우영)

지난 겨울 화서문 성안 팔달산 쪽, 그러니까 서북각루 안쪽 작은 숲에 오래된 뽕나무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눈 덮인 언덕에 올라 헤매다가 이 나무들을 발견했다. 화서문 옆 한때 주막집으로 쓰였다가 지금은 화성 시설물 관리인이 사용하고 있는 초가집 위 언덕이었다. 세 그루였는데 외관상으로만 봐도 분명 오래된 나무였다. 덩굴류도 아닌데 나무가 배배 틀려 올라가고 있다. 몇 달 지나 봄이 되자 정체가 밝혀졌다. 올라온 꽃눈을 보니 라일락이다.

이렇게 큰 라일락은 처음 봤다.

이 라일락 나무들의 현재 상태는 그리 좋지 않다. 자연 속에 노출돼 있어 언제 해를 당할지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보존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혹시나 싶어 성 안팎을 걸어 다니며 라일락나무를 조사했다. 4월로 접어들고 봄꽃들의 개화시기가 되자 여기저기서 라일락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