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락스 통에 담가 놓은 걸레들
꽉 짜보면 눈물 나지 않는 걸레가 없다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는
바싹 마른 걸레도
뼈마디 관절마다 파스 안 붙인 곳이 없다.
-이종구 「걸레를 빨며」 전문
나는 눈물에도 급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왕이면 아름다운 눈물을 간직한 사람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 사는 일이 어디 그리 녹록하기만 한가. 험한 세상 살다 보니 여기저기 내가 묻힌 때가 만만치 않다.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하더라도 마음에 닿는 것은 당연히 닦아야 한다. 걸레를 빨면서도 구정물이 손에 닿는 것이 거북하였을 뿐 그것을 짤 때 내 눈물도 함께 흘러내린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이종구의 시 「걸레를 빨며」는 아름다운 눈물을 간직한 사람이기를 소망한 나의 헛된 바람에 개심사 부연 끝 풍경 소리같이 잔잔한 깨달음을 준다.
시인 이종구는 수원 고색동에서 태어났다. 필자가 이종구 시인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80년대였다. 유신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서슬이 시퍼런 군부독재의 암울한 뒷골목에서였다. 몇몇 젊은 시인들이 ‘시발(詩發)’이라는 동인을 결성하고 모였다. 한자의 훈(訓)을 새기자면 ‘시를 쏘다’이다. 이 얼마나 장하고 치열한 창작 정신인가. 그런데 그 뜻을 빼고 소리만 듣자면 어쩐지 요상하다. ‘시발’이라니. 불경하고 불온하기까지 하다. 이종구 시인과 나는 그 동인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이종구 시인은 그 후로도 거의 수원을 떠나지 않고 수원에서 시를 써 온 시인이다. 그런데 막상 수원의 시인들조차도 이종구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의 성격 탓이다. 언제나 조용하고 온유하다. 도통 나서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종구 시인만큼 내적으로 단단한 사람을 만나기도 그리 쉽지 않다. 그 단단함 속에 가끔은 허술한 곳이 보인다. 그런데 그 허술한 자리를 슬쩍 엿보면 여지없다. 그 자리는 시를 위해 비워 둔 공간이다.
이종구 시인을 살아온 길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골목들뿐이었다.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도 야학에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고 탄광 노동자에서부터 포장마차 운영 그리고 대리기사에 이르기까지 온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헤쳐나왔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꾸려온 직업의 가짓수가 본인 스스로도 이루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다고 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시인은 늦은 밤 만취한 채 귀가를 하는 승객을 태우고 어디론가 택시를 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험난한 세월 동안 시를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시에는 현란한 수사보다 그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묵직한 떨림이 있다.
위의 시 「걸레를 빨며」도 그런 시 중에서 한 편이다. 이 시 속에 그려진 걸레는 일반 가정의 일상용 걸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청소를 하는 노동자의 걸레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큰 건물의 구석구석을 묵묵히 닦아내는 걸레이다. 그 걸레로 닦아낸 것은 얼룩과 때만이 아니다. 당연히 걸레질하는 이의 애환이 묻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밤 원치 않는 회식으로 화장실에서 토악질을 하면서까지 자리를 지켜내야 했던 가장의 아픔과 가사노동에 육아 그리고 시부모 공양까지 하면서도 맞벌이를 놓을 수 없는 여직원의 눈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눈물들을 닦아내 걸레이다.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락스 통에 담가 놓은 걸레들/꽉 짜보면 눈물 나지 않는 걸레가 없다’라고 시인은 우리네 삶의 정곡을 찌른다. 그리고 이어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는/바싹 마른 걸레도/뼈마디 관절마다 파스 안 붙인 곳이 없다.’라며 노동에서 오는 통증을 드러낸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아픔이다.
서너 살 더 먹었다는 까닭으로 이종구 시인은 필자를 ‘형’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호형호제하며 함께 40년 넘게 시의 길을 걸어온 도반이다. 그런데 반성한다. 과연 나는 몇 번이나 그의 등을 도닥여주었던가. 종구야 쉬는 날이 언제냐. 너 좋아하는 빈대떡집에서 만나자. 내 주머니 속에 파스 한 통 사서 넣어 나가마. 푸념이라도 좋다. 소주 한 잔에 굳이 시 이야기 말고 사는 이야기나 원 없이 하자. 내일이 또 관절 마디마디 파스를 붙여야 하는 아픔이더라도 바싹 마른 걸레 둘이 마주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