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님, 내일부터 전 교인이 합심하여 전도사님 석방을 위해 철야 기도하기로 하였어요." 하기에 깜짝 놀라 그러지 말라고 설득하였습니다.
"아니 빈촌에서 겨울에 일감이 없어 굶는 집들도 적지 않은데 잠이라도 푹 자야지 철야 기도를 한다니 안될 일이야. 내가 15년 선고를 받았는데 그래도 몇 년 살다 나가야지 1년 된 지금에 나갈 수 있겠냐."
내 말에 교인들이 확신에 찬 어조로 답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니 베드로가 옥중에 있는데 신도들이 밤새워 기도하였더니 옥문이 열렸습디다. 지금도 그런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청계천 활빈교회 성도들은 나의 석방을 위하여 40일간이나 기간을 정하고 밤마다 철야 기도 하겠노라 하였습니다.
나는 마음에 부담이 되어 그러지 말고 잘 먹고 잘 자라, 나는 때가 되면 나가게 될 것이니 무리하지 말라 일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막무가내로 40일간 철야하고 구역별로 돌아가며 3일씩 금식하며 "우리 전도사님 옥문을 열어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철야 기도와 금식 기도를 드리겠노라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나는 그들이 돌아간 후에 잊어버리고 있었으나 활빈교회 성도들은 다음 날부터 밤마다 판잣집 교회당에 모여 철야 기도드리고 구역별로 3일씩 금식 기도를 이어 나갔습니다.
40일이 되는 날이 2월 14일이었습니다. 2월 15일이 되자 교도소 분위기가 술렁이더니 아침 9시 경에 교도관이 방으로 찾아와 밝은 얼굴로 일러 주었습니다.
"73번, 기쁜 소식이요. 오늘 집으로 가게 되었수다. 얼른 짐 꾸려 나갈 준비하세요."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정치범들은 한 교도소에 오래 머물게 두지 아니하고 교도소를 옮겨가며 관리합니다.
나는 다시 다른 교도소로 옮긴다는 것인 줄로 지레 짐작하고 교도관에게 말했습니다.
"또 다른 교도소로 옮기는 모양인데 따뜻한 제주교도소나 진주교도소로 옮겨 주시오" 하였더니 교도관은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예, 나가신 후에 제주도로 가시든지 하와이로 가시든지 알아서 가시라요."
나는 짐을 꾸려 교도관의 안내를 받으며 수원교도소 정문을 나서니 활빈교회 교인들이 버스 두 대로 마중 나와 두 줄로 서서 나를 환영하여 주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목자 돌아오셨다"는 플래카드를 들어올리며 "할렐루야"하며 나를 환영해 주는데 나는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여 몸 둘 곳을 몰랐습니다.
나는 감격에 넘쳐 수원교도소 앞길에 엎드려 흙바닥에 입을 맞추며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였습니다.
차에 올라 청계천으로 돌아오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종길 집사가 내게 물었습니다.
"전도사님, 오늘이 며칠 짼 줄 아세요?" 하기에 구속된 지 며칠 째인 줄로 묻는가 하여 "예, 13 개월이 조금 지난 것 같은데요" 하였더니 "그기 아니고요. 우리가 지난 번 면회 와서 40일 철야 기도한다 하였는데 그 후로 며칠 째인지 아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글쎄, 난 그 말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오늘이 며칠 째인가요?"하였더니 김종길 집사가 일러 주었습니다.
"바로 어제 밤이 금식 40일째입니다. 그때 전도사님은 안 믿었지만 우리가 40일간 금식을 마치고 나니 오늘 석방된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신기한 생각이 들어 "그 참 신기한 일이네. 40일 금식이 마치는 날 내가 석방이 되었구나. 참 신기하네." 하였더니 주위에서 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전도사님, 신기하단 말이 섭섭하네요. 우린 잠을 못 자서 졸려 죽겠는데 신기하다니요."
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춥고 배고픈 청계천 빈민촌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것으로 믿어져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