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수원엔 오래된 라일락 나무들이 숨어있다(하)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전편에서 계속)... 화서문 위쪽 언덕 라일락에 이어 내 눈에 띈 라일락 고목은 행궁동행정복지센터 옆 골목에 있는 이탈리아음식점 ‘라일락’에 있는 두 그루였다. 그 골목을 그렇게 자주 다녔으면서도 이게 라일락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지난 2019년 9월 30일 화성행궁 유여택에서 세계 각국 시인이 모여 ‘제1회 수원 화성 KS(KOREA SUWON) 세계 시낭송 축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독일 한스 울리히 트라이헬, 중국 왕인, 프랑스 위그 라브뤼스, 러시아 박미하일, 루마니아 이온 데아꼬네스꾸, 몰도바 니꼴라 다비자, 이탈리아 라우라 가라바글리아, 베트남 딘티누 등 외국 시인 8명과 필자(김우영)를 비롯해 권성훈, 김왕노, 나태주, 이인평, 임병호, 윤석산, 정수자, 황동규 등 국내 시인 9명이 시를 낭독했다. 행사가 끝나고 이 집에서 만찬을 한다고 해서 잠시 들렀는데도 마당에 있는 이 나무들이 라일락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4월 그 나무가 라일락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방문했다. 업주는 이 집에 온 지 4년 정도 된다고 한다. 그는 “이 집에 사시던 할아버지는 현재 연세가 90대 중반인데 이 나무는 그 분 100일을 기념해 심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나무의 나이는 95살이 넘었다는 얘기다. 5년 정도 된 나무를 심었다고 가정하면 100년이 넘은 것이다.

이 집 마당에 있는 라일락은 두 그루다. 모두 노화상태여서 꽃이 많이 피지 않았다, 한그루는 줄기를 갱신하기 위해 가지들을 잘라냈다. 전문가들은 새순이 안 나오는 가지는 잘라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면 새순이 돋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화서문 언덕 위 라일락 고목도 가지를 잘라낸 흔적이 있다. 나름대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 라일락 거목이 있는 곳은 행궁동 내의 북수동 사거리에서 화서문 가는 길, 2013년 수원생태교통축제가 열렸던 중심도로다. 북수동 사거리에서 화서문 방향으로 50m정도, 도로명 주소 화서문로 61에 ‘수라간’이란 음식점이 있는데 이 집 마당에도 멋들어진 라일락 고목이 있다.

행궁동 음식점 ‘수라간’ 마당에 있는 오래된 라일락. (사진=김우영)
행궁동 음식점 ‘수라간’ 마당에 있는 오래된 라일락. (사진=김우영)

현재 이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은 동네사람들로부터 100년은 됐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나무 몸통 굵기가 어린아이 허리 정도이니 그럴 만 하다. 이 나무도 노화되어 보호조치가 시급해 보인다. 나무 몸체는 서쪽으로 길게 누워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쓰러지지 않도록 보호 받침대를 설치해 놓았다.

오래된 라일락 가운데 수원세무서 옆 매산동 경로당 마당 구석에 있는 나무는 가장 건강하고 수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이 나무 역시 100년은 족히 돼 보이지만 다른 라일락 고목들과는 달리 많은 꽃과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그 옆을 지나치기만 해도 향기가 아찔하다.

나무 건강상태도 어찌나 좋은지 경로당에서 담장과 가지에 철봉을 끼워놓고 의자그네를 걸쳐 놓았을 정도다. 그러나 사람이나 나무나 오래되면 어느 순간 노화가 급작스레 올 수도 있으므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라일락은 수원시의 대표적 라일락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확실한 수령은 측정해봐야 알겠지만 외형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는 고목임을 알 수 있고, 수형(樹形) 또한 빼어나기 때문이다.

매산동 경로당 마당 구석에 있는 라일락. (사진=김우영)
매산동 경로당 마당 구석에 있는 라일락. (사진=김우영)

옛 신풍초등학교 북동쪽 담장 밖 로터리에 있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신풍와드(수원시 팔달구 정조로841번길 20) 안에도 오래된 라일락 한그루가 보인다. 마침 조경 전문가가 정원을 관리하고 있던 터여서 수령은 물으니 80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라일락이 있는 곳은 조선시대 이아(貳衙)라는 관청이 있던 자리다. 이아는 1793년 수원이 유수부로 승격이 되면서 설치되었다. 이아의 책임자는 종 5품의 판관(判官)이 임명됐는데 유수를 보좌해 유수부의 실무를 맡았다. 사실상 유수부의 실제 업무와 활동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아는 화청관과 축리당, 서리청, 수첩청 등 102칸이 넘는 크기로 이뤄져 있었다. 지난 2015년 교회 주차장의 발굴조사를 통해 이아의 옛터가 확인되기도 했다. 이아는 ‘경술국치’ 이후 재판소와 법원 용도로, 1956년부터 1972년까지 수원법원과 검찰청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법원이 이사한 뒤에는 난파합창단의 연습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밖에 북수동 정조로 860번길 23-4 집안, 같은 동 860번길 19-3 집안, 교동 대한성공회 수원교회 안, 화성 동쪽 성벽 동남각루~동2포루 안쪽 벼랑(5그루), 화성 동쪽 성곽 동1치 밖 창룡문로 11번길 51호 집 앞 느티나무 옆, 지동마을 시립지동어린이집 옆 창룡문로 58-1 집안 등에서도 오래된 라일락나무들이 발견됐다.

팔달산 중턱에 있는 사찰 대승원 앞마당에도 토종으로 보이는 오래된 라일락이 두 그루 있다. 대승원 황영 사무국장에 의하면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도 이 라일락이 꽤 컸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60세가 넘었다. 그러니 이 라일락들은 80살은 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라일락 나무들은 모두 굵기가 만만치 않은 고목들이다. 라일락은 보통 키 작은 관목수로 수령이 60~70년을 넘지 못한다고 하는데 수원시내 화성 성 안팎에 이처럼 많은 라일락 고목들이 살아있다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한 그루 한 그루 모두가 소중하게 보호해야할 수원의 보물이다. 이 오래된 라일락들은 우리 고유의 토종자원이기 때문이다.

충북 단양 소백산에서 정향나무농장을 운영하며 토종라일락인 수수꽃다리, 정향나무, 꽃개회나무 등을 키우는 라일락전문가 김판수에 따르면 토종 라일락은 미스김라일락이나 왜성라일락, 미국 및 유럽산 라일락 등 외국에서 들여온 라일락 품종과 구분하여, 우리나라의 야생에 자생하는 수수꽃다리 속(屬)의 종(種)에 대해 불리어지는 명칭이라고 한다. 식물 분류학적으로 정향나무, 털개회나무, 흰정향나무, 꽃개회나무, 섬개회나무, 흰섬개회나무, 수수꽃다리, 개회나무, 버들개회나무 등이 토종 라일락이라는 것이다.

현재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장악하는 미스김라일락은 1947년 북한산에서 채취된 수수꽃다리속 털개회나무 씨가 미국으로 건너가 개량된 것인데 당시 자료를 정리해주던 한국여성의 성을 따 이름 붙였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로열티를 물며 수입해 들여오고 있다.

수원에서 발견된 라일락은 토종과 외래종이 혼재돼 있다.

전문가들은 토종의 잎은 심장형에다 윤곽이 둥글고 넓적하지만, 외래종은 긴 이등변삼각형이라고 한다.

확인해 본 바 수원세무서 옆 매산동 경로당 마당 구석에 있는 라일락과 음식점 수라간 안의 라일락, 이탈리아음식점 라일락 마당의 라일락들은 잎사귀 윤곽이 둥근 심장형의 토종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화서문 옆 언덕 위의 라일락이나 다른 라일락 들은 한 그루에서 심장형 모양과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잎이 서로 혼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잎 모양이 심장형인지 이등변삼각형인지조차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항 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토종과 외래종의 교잡이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수원시내 곳곳에 보호 가치가 있는 라일락 고목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 발굴을 통해 보호수 지정 등 보호계획이 수립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