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4)] 이정순 '칠보산'

김준기 시인

 

여덟 개의 보물 중

금닭을 잃었다는 전설의 산

몇 해째 그 귀한 것에 마음 두지 않았다.

그저 발밑에서 눈높이에서

철마다 온갖 꽃들의 잔치가 열려

오르며 내리며 그 애들과 송알송알

입맞추며 노래하다 슬몃, 마음 놓친

일이 있었을 뿐.

                                   이정순  -칠보산- 전문

 

인간의 탐욕과 무욕의 경지 사이를 가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과연 그런 경계가 있기나 할까. 항상 그것이 문제였다. 살면서 지나친 욕심이 탈을 불러왔다는 반성을 수도 없이 한다. 나는 그때마다 마음을 비우자고 다짐하지만, 그 경계가 보이지 않아 또 실수를 반복하는 장삼이사 중 하나일 뿐이다.

칠보산은 광교산과 더불어 수원시민이 가장 즐겨 찾는 산이다. 산의 이름이 ‘칠보’가 된 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이 산의 이름은 원래는 여덟 개의 보물이 있어서 팔보산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보물을 찾기 위해 산으로 몰려들었고 급기야는 산기슭에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마을에 살던 장씨 성을 가진 상인이 밤늦게 이 산의 고개를 넘다가 못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닭을 구해주었다. 이 닭이 바로 여덟 개의 보물 중 하나라고 알려진 황금 수탉이었다. 그 닭을 노린 도둑들이 장씨의 목숨을 빼앗고 닭을 훔쳐 달아났다. 물론 천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황금닭마저 크게 한번 울고 보통 닭으로 변하여 죽고 말았다. 여덟 개의 보물 중 하나가 사라져 칠보산이 됐다는 게 이 산의 이름에 얽힌 전설이다.

시인은 산을 오른다. 그런 전설이 담긴 칠보산이다. 그러나 시인은 전설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다. 탐욕과 무욕의 경계가 무슨 대수랴. ‘철마다 온갖 꽃들의 잔치가 열려/오르며 내리며 그 애들과 송알송알/입맞추며’ 산을 수놓은 꽃들이 아름다울 뿐이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맺힌 게 은구슬뿐인가. 다문다문 자리 한 개나리며 진달래. 온갖 꽃들이 송알송알 꽃잔치이다. 그 아이들에게 입을 맞춘다. 옛사람들이 말하던 무욕의 물아일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 꽃들에 입맞춤하는 순간이 물심일여의 순간이다.

흔히 여운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면 시가 재미가 없다. 또 울림의 폭도 그만큼 좁아진다. 시인은 ‘입맞추며 노래하다 슬몃, 마음 놓친/일이 있었을 뿐.’이라고 스며시 눙치며 시를 마무리한다. ‘놓친’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일부러 ‘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슬몃’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슬며시 놓친 게 아니라 남모르게 짧은 순간에 ‘슬몃’ 놓은 것이다. 이게 시의 묘미다. 그 놓은 마음이 무엇일까. 시인은 그것까지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일까 상상하는 게 독자의 몫이고 즐거움이다. 시인도 ‘있었을 뿐’이다. 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정순 시인은 강원도 양양이 고향이다. 온갖 생명을 넉넉히 품어주는 태백산맥과 망망대해의 쪽빛 바다가 어깨를 나란히 한 곳이다. 어쩌면 그곳에서부터 마음을 놓는 방법을 체득한 시인이다. 시인이 수원으로 이주해 수원 사람, 수원의 시인이 된 지도 어느새 이십여 년이 되었다고 한다. 2006년 『문학시대』로 등단을 해 2017년이 되어서야 첫 시집 『아버지의 휠체어』를 펴냈다. 이 시도 그 시집 속의 시 중 하나이다. 등단을 하고도 11년만에 시집을 펴낸 셈이다. 그만큼 농익은 시들로 채웠다.

하마 꽃들은 다 졌을 것이다. 산수유가 진 것은 벌써이고 개나리도 진달래도 그리고 그나마 조금 늦게 피었다 지는 철쭉도 인젠 그 꽃의 자취를 숨겼으리라. 그러면 어떤가. 어쩌면 산집 샘터 근처에는 하얀 수국이 소담스레 피었을 것이다. 벌써 오십여 년ㅅ 전 수국꽃 그늘 아래 꽃보다 단아한 자태로 앉아있던 소녀는 누구였던가. 아, 가슴이 아리다. 봄날이 드리운 치맛자락의 끝단을 잡고 오는 토요일에는 칠보산이라도 다녀와야겠다. 내 한 번도 세속의 보물과는 인연이 없었으니 어쩌면 일찍 산을 찾은 뻐꾸기 울음을 들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