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살이에서 풀려난 나는 빈민 선교에 다시 열중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감옥으로 들어갈 때는 교인 수가 150명 정도였는데 출옥하고 보니 300명에 가깝게 늘어났습니다.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없으니 교인들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으니 이게 문젠데요. 그렇다면 내가 사라져야 교회에 좋다는 거 아니겠어요." 하였더니 교인들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그런 기 아니구요. 전도사님 석방시켜 달라고 온 교인들이 철야하며 기도하는 중에 성령 체험을 하고 방언 은사가 터지고 신령한 체험들을 하게 되어 교인들이 은혜 받아 교회가 부흥케 된 거에요. 이제 전도사님이 오셨으니 더 부흥돼 가겠지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모두들 행복을 나누었습니다. 나는 다시 넝마주이 일을 시작하여 우리 나와바리인 뚝섬 지역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로 지나며 주일이면 하루 쉬며 교인들과 예배드리곤 하였습니다.
내가 옥중에 있는 동안에 슬픈 일들도 있었습니다. 교인 중에 훈이 엄마란 분이 있었습니다. 나를 붙들고 울며 남편이 죽게 된 사연을 일러 주었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파하였는데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를 못하고 시간을 끌다 나중에 급해져서 딸라 돈을 빌려 병원엘 갔는데 담석증이랬어요. 병원에 너무 늦게 간데다 수술비를 마련치 못하여 죽었시요. 전도사님만 계셨음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억울합니다요. 전도사님, 이제는 감옥에 가들 마시라요."
이렇게 넋두리를 하며 흐느껴 우는데 나도 함께 울었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죽은 후로 훈이 엄마는 장안벌 비닐하우스 안에 시금치 밭에 나가 날품 팔며 3남매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훈이 엄마와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예배 후에 훈이 엄마 일로 나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전도사님요, 훈이 엄마 좀 도와 주시라요."
하기에 물었습니다. "훈이 엄마에게 무슨 사고라도 있나요. 무얼 도와 달라는 거지요?"
하고 물었더니 시금치 밭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아줌마 둘이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일하다가도 배가 아프다 하고요. 구토가 나고요. 자꾸 어지럽데요.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되니 하루 일하고 하루 쉬고 하니 3남매 키우기도 힘들어 사정이 말이 아니라요. 전도사님이 병원에 델꼬 가서 진찰해 주시라요."
그러기에 나는 짐작 가는 바가 있어 말했습니다.
"병원에 갈 것도 없네요. 다 아는 병이네요."
하였더니 아줌마들이 말했습니다.
"아니 다 아는 병이라니요. 뭔 병인지 병원에 가보지도 않고 어찌 아신다요."
"아는 병이지 뭐, 임신한 거지요. 증세를 들으니 틀림없이 임신이잖아요."
"아니 전도사님, 남편도 없이 어떻게 임신을 헌다요."
〈요즘 세상에 남편 없어도 임신 곧잘 하잖아요. 처녀들도 임신하는 세상인데요. 임신하고는 부끄러우니까 말 못하고 있는 거지요. 애기를 지우지 말고 낳으라 하세요. 교회서 키웁시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는 헤어졌는데 며칠 후 넝마주이 일하고 있는 뚝섬 지역까지 아줌마 둘이 숨 가쁘게 찾아왔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도사님, 훈이 엄마가 시금치 밭에서 일하다 쓰러졌어요. 전도사님 불쌍한 훈이 엄마 좀 살려주세요. 애들 아빠도 그렇게 죽었는데 엄마까지 죽게 되면 애들은 어떡하나요."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훈이 엄마께로 갔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