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5)] 성백원 '울 어머'

김준기 시인

 

땅이 꺼지고 포탄이 터져도

봄은 꽃 피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뼈를 갈아 교회에 납골하고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도

어머는 자식을 꾸짖지 않는다

자식들의 변명이 가당찮아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

울 어머는 꿈에서라도

자식들을 보듬는다

그래 그래

그래서

그 이름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어, 머~

어무이~~

어무이요~~~

                                     성백원 「울 어머」 전문

 

나라마다 민족마다 쓰는 말이 다르다. 나라가 같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투리 때문에 의사소통이 불편한 지역도 있다. 그런데 나라와 민족 그리고 지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만국공통어가 있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얼마가 지난 후 말을 배우려 옹알이를 할 때, 한없이 자애로운 엄마의 얼굴을 보고 내는 소리는 똑같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외국어에서 엄마를 나타내는 단어는 그 음가가 거의 유사하다. 사투리도 그렇다. 엄니, 어무이, 어매, 오마니, 어멍, 어마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투리가 있지만 그 소리가 다 닮았고 누구에게나 넉넉하고 그리운 이름이 엄마이다. 

시인은 어머니를 안타깝게 부른다. 한 어절로 이어 부르지도 못하고 미처 다 소리내어 부르지도 못하고 ‘어, 머~’라고 끊어서 부르다 만다. 그러면서 ‘그 이름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라고 한다. ‘땅이 꺼지고 포탄이 터져도/봄은 꽃 피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창조의 여신으로 태초의 모든 것들을 낳은 어머니는 가이아이다. 땅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비록 ‘포탄이 터져도 꽃 피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위대한 생명의 여신이 멀리 있었던 게 아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돌보고 품어주시던 어머니가 바로 그분이다. ‘뼈를 갈아 교회에 납골하고/절에서 천도재를 지내도’라는 구절로 보아 어머니는 생전에 절에를 다니셨고 아들은 교회를 나갔음을 알 수 있다. 부모 자식 사이에 종교가 다른 일이야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러함에도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이웃들의 입방아가 어수선하다. ‘어머는 자식을 꾸짖지 않는다/자식들의 변명이 가당찮아/입방아에 오르내릴 때/울 어머는 꿈에서라도/자식들을 보듬는다’ 어머니는 꾸짖지 않고 그 사정을 헤아려 꿈에 나타나 생시처럼 보듬어 주신다.

그러고 보니 성백원 시인을 만난 지도 거의 삼십 년이 되어간다. 김우영 시인과 이제는 고인이 된 연극인 김성렬 형이 밤늦게 불러낸 선술집에서 성백원 시인을 처음 만났다. 성백원 시인은 언제 만나도 넉넉하고 한결같다. 성백원 시인과 내가 함께 있는 술자리에서는 내가 그를 부르는 호칭으로 얼마나 취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성백원 시인’이라고 부르면 조금 취한 거고, ‘백원이 형’ 하면 어느 정도 취한 거고, ‘야 백원아’ 하고 호기를 부리면 만취한 것이라 한다. 그렇게 무례를 범해도 다음에 만나면 한결같이 넉넉한 웃음으로 ‘잘 있었어?’ 하는 사람이 백원이 형이다.

그 넉넉한 웃음의 성백원 시인에게도 어머니를 잃은 아픔은 한결같다. ‘어버이날’이다. 다 커서 품을 떠난 자식이 모처럼 올 것이다. 오지 못하리만치 멀리 있거나 사정이 어려우면 전화라도 올 것이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고 했던가. 나무는 멈춰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기다려주지 않는 부모. 자식들이 우리를 찾아도 우리는 찾아갈 부모님이 아니 계시다. 아니 갈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계시다. 그래서 꺼내 본 성백원 시인의 시집 『싼티 입고 가는 길』 에 들어있는 시 한 편 「울 어머」 속에서 ‘어무이요’를 시인과 함께 외쳐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