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아침묵상] 내 삶을 이끌어 준 10가지 말씀(47)

김진홍 목사

얼굴이 파리한 채로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여 택시에 태우고 을지로 6가에 있는 메디칼센터로 갔습니다. 

응급실에서 진찰하더니 자궁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엑스레이를 찍어 오라 하였습니다. 엑스레이실로 갔더니 수납에 비용을 치르고 오라 하였습니다.

돈을 마련해 오지 못하였으니 사진부터 찍고 절차를 밟아 주면 돈을 구해 오겠노라 하였더니 엑스레이엔 외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급한 마음에 다시 택시를 타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가서 김상현 군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김상현 군이 결석하였습니다.

서울대학병원을 거쳐 동대문 로터리 부근에 있는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마다 접수처에서 받아주지를 않아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다 시간은 오후 5시를 지났습니다. 

나는 지쳐 기진맥진하였는데 판자촌으로 돌아가 내일 다시 길을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주머니에 돈이 떨어져 버스비조차 없었습니다. 나는 동대문 로터리 종합운동장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환자를 업은 채 차장 아가씨께 부탁을 했습니다.

"아가씨, 환잔데 병원을 돌다 차비가 떨어졌네. 그냥 좀 태워줄 수 없을까?" 하였더니 차장 아가씨들이 매몰차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퇴근 시간에 발 디딜 틈도 없는데 어떻게 환자 델꼬 공짜로 타려 해요. 뜸해진 뒤에 타시라요."하며 버스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훈이 엄마를 업고 걸었습니다. 한양대학 뒤편 송정동 판자촌까지 걷자니 100리 길이나 되듯이 아득하였습니다. 

훈이 엄마를 업고 걷던 나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힘들게 걸어가는데 훈이 엄마가 등에 붙어서 쉽게 걸어갈 수 있도록 협조를 해주어야 하는데 자꾸만 뒤로 제쳐지니 힘이 들어 화가 난 것입니다. 나는 짜증난 목소리로 나무랐습니다.

"훈이 엄마, 등에 딱 붙어 주세요. 자꾸 뒤로 넘어지면 내가 힘들잖아요. 내 등에서 잠자는 겁니까? 왜 자꾸만 뒤로 제쳐집니까?"

그러면서 뒤로 쏠리는 몸을 추스려 등에 붙여서 걸으면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뒤로 제쳐지곤 하였습니다. 너무 화가 난 나는 성동소방서 마당에 이르러서 소방서 마당에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깍지 끼고 있던 손을 풀어버리니까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화가 너무나 치민 나는 바닥에 떨어진 사람을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투덜거렸습니다.

'사람이 협조를 해 주어야지 염치없이 등에서 잠만 자면 어떡하나요.'그렇게 화풀이 하다 떨어진 사람이 움직이지를 않기에 이상히 여겨 다가가 보았더니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그녀가 죽은 것을 알고는 머릿속에서 윙 소리가 나며 눈앞이 캄캄하여졌습니다.

그냥 훈이 엄마 곁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죽어서 뒤로 제쳐지는 것을 모르고, 화만 내다가 시멘트 바닥에 팽개치듯이 떨어뜨렸으니 내 마음에 비참함이 물밀듯 다가왔습니다.

나는 예수가 원망스러워 하늘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너무하십니다. 불쌍한 훈이 엄마 하루 종일 병원 찾아다니다가 힘없는 내 등에서 죽게 외면하십니까. 해도 너무 하십니다. 난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