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타계한 화가 '자페르 겐차이든(Zafer Gençaydın)'의 영결식이 하제테페 미술대 갤러리 영상실 홀에서 있었다.
하제테페 미술대 교수는 물론, 예술가, 학생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가 머물렀던 학교 교정에서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지 튀르키예 동북 도시 말라티아로 떠나 보냈다.
15년을 튀르키예에 살았지만 이렇게 길게 집도하는 영결식은 처음 보았다. 아마도 예술가 자페르 겐차이든이 튀르키예 미술사에 남겨 놓은 추상미술세계의 업적이 대단했기에 더욱 애석한 영결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그림, 빨간 새가 푸른 하늘을 적셨다.
마치 그가 멀리 말라티아로 떠날 것을 예견이나 한듯 그의 그림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필자가 2010년 처음 하제테페 미술대 도예과에 강의를 시작할 무렵, 인근 야외 들판으로 가면 길쭉한 미루 나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60, 70년대의 농촌에 길게 늘어선 미루나무(포플러 나무)가 특히 여름을 대표하듯 어릴 적 긴 추억으로 필자에겐 남아 있다.
포플러(poplar)는 대중이란 뜻으로 이 나무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한국 농촌 논밭에 길게 늘어 섰던 그 나무가 튀르키예의 도시 농촌에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자페르 겐차이든. 그가 그린 포플러를 그린 반추상적 그림이 한국과 튀르키예의 농촌이 서로 닮은 상징적 표현으로 오버랩 됐다.
그의 남긴 미술세계 발자취를 더듬는다.
토로스 대학교 미술대 우르잔 아큐스 학장은 자페르 겐차이든의 평생 업적에 대해 입을 열었다.
'1941년 앙카라에서 태어난 자페르 겐차이든은 1965년 Gazi 교육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7년에 그는 베를린 미술 학교 회화과에서 교육을 마치고 '마이스터슐러'라는 칭호를 받았다.
1977년부터 1978년까지 그는 같은 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열린 '영화 구조의 기초 - 영상 음향 관계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는 1978년부터 1983년까지 가지대학교 회화과에서 근무했다.
하제테페대학교 미술학부 회화과 창립 이래 재직하던 작가는 1994년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두 학기 동안 학장을 역임했다. 그는 다양한 간격으로 독일의 문화 세미나에 초대되었다.
Ankara Painting and Sculpture, DYO, Anadolu, Hacettepe, Gazi, Istanbul Modern 등의 박물관에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겐차이든은 국내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여 상을 받았다.
그는 3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세 권의 책과 많은 에세이, 연구 논문이 출판되었다.'
독일의 'New Savages Group'에서 시작한 추상표현주의 회화적 접근 방식을 꾸준히 견지하고 있는 작가는 삶과 예술을 역동적인 과정으로 바라본다. 모든 것이 역동적이고 긴장감이 넘친다.
인간, 자연, 사회적 사건의 드라마를 반영하는 요소가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나는 내 그림을 꿈꾸고, 그 다음에 내 꿈을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가 내 꿈을 그리는 내면이라 주장했듯이, 튀르키예의 평론가들은 자페르 겐차이든의 예술 사상에 대해 "그림은 사람의 손글씨와 같으며, 그의 내면세계를 순수하게 표현한 것이다"라고 입모아 이야기한다.
자페르 겐차이든. 그는 추상 표현주의의 독창적인 대표자였다.
그의 예술, 가르침, 우정, 삶의 입장, 그는 항상 '그 자신'으로 존재했다. 그는 다른 의미 같은 것 없이 살았다.
깊은 감성, 형태와 감성을 미화하는 독특한 미술로 깊은 흔적을 남긴 그는 사랑하는 스승이자 화가이자 교수였다.
튀리키예는 자페르 겐차이든을 잃었지만, 이제 그의 영원한 예술세계의 휴식이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