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충칭(重慶) 임시정부에서 남몰래 눈물 닦았다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며칠 전 형제들과 중국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에 다녀왔다.

우리 형제들은 1년에 한번 정도 국내·외 여행을 한다. 그동안 국내 제주도를 여러 차례 다녀왔고 중국도 여행했다. 베트남도 함께 가기로 했으나 우리 아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나머지 형제들만 다녀왔다.

내년엔 막내 동생이 환갑을 맞는 해다. 어디로 갈까, 벌써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주변에선 이런 우리 형제들끼리의 여행을 매우 부러워한단다. 남들은 부모 재산이나 제사문제 등으로 다투는 일이 잦은데 너희 형제들은 어떻게 매년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번 여행지를 충칭으로 하자고 주장한 이는 막내 동생이다. 사업상 중국을 내 집처럼 드나드는데다가 현지에 조선족 동포 직원까지 상주시키고 있는 중국통 동생은 얼마 전에도 쓰촨성 청두(成都)에 다녀왔다.

쓰촨의 음식과 풍경을 이야기하면서 충칭으로 가자는 말에 형제들은 모두 찬성했다.

중국 쓰촨성 충칭시의 명소 홍야동. (사진=김우영)
중국 쓰촨성 충칭시의 명소 홍야동. (사진=김우영)

충칭까지는 4시간 정도 비행해야 하는 먼 거리였다. 첫날은 장강이 내려다보이는 충칭 도심관광의 중심지 홍야동(洪崖洞)을 구경했다.

그곳에서 경악스러울 정도로 맵고 얼얼하고 짠 맛의 사천요리와 56도짜리 현지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한 후 숙소에서 쉬었다.

그리고 둘째 날, 모두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부터 방문했다. 형제들은 유쾌한데다 활기찬 성격들이어서 유명 관광지들이나 들르자고 할 줄 알았지만 뜻밖으로 임시정부 청사부터 가자는 내 말에 조금치의 이의 없이 동조했다.

충칭의 중심인 해방비 광장 인근에 우리 숙소를 정했는데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다. 슬슬 걸어서 가도 되는 곳이다. 큰 길에도 한글 표시 안내판이 있어서 찾기가 어렵지 않다.

표지판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가면 고층 빌딩들 틈에 보이는 어두운 색채의 낮은 건물이 나타난다. 이 건물이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다.

중국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사진=김우영)
중국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사진=김우영)

임시정부 청사 앞면에는 임시정부의 간략한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1919년 4월 13일 상하이(上海)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일본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항저우(杭州), 자싱(嘉興) 등을 거쳐 1940년에 충칭에 도착했다. 마지막에 정착한 곳, 충칭시 유중구 칠성강 연화지 38호, 바로 여기다. 이곳에서 광복을 맞이했다.

나는 지난 2019년 6월 중국 항일 유적지를 답사한 바 있다. ‘수원시 3.1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추진위원으로서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자싱(嘉興) 김구 선생 피난처, 항저우(杭州)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했다.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한 대표적인 청사다, 이곳에 모인 애국지사들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김구 선생은 자싱시에서도 머물렀다.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 후 프랑스 조계에서 쫓겨나 중국 관내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던 중 중국인 추푸청(褚輔成)에게 2년간 몸을 의탁했다. 추푸청은 아들 추펑장과 며느리 주자루, 며느리 집안을 총동원해 거액의 현상금 유혹까지 이겨내며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을 적극 보호했다.

항저우(杭州)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도 돌아보았다.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는 상해를 떠난 임정이 사용했던 곳으로 1932년부터 1935년까지 약 3년간 머물렀다.

그리고 이번에 드디어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충칭 임시정부는 중국에 있는 대한민국 독립운동 사적지 중 규모가 가장 큰 전시관으로 1호 건물부터 5호까지 5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실제 그 시대의 모습 그대로 복원한 것이란다. (3층과 4층 구조는 나중에 증축된 것)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계단과 건물들. (사진=김우영)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계단과 건물들. (사진=김우영)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 동상.(사진=김우영)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 동상.(사진=김우영)

가운데 계단을 두고 양쪽으로 건물들이 배치돼있는 구조로 1호관 건물엔 커다란 태극기와 김구 선생의 동상이 있다.

전시관에는 임시정부 인사들의 사진과 활동내역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건물 곳곳에 전시물과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이 생활하던 방도 복원해 놓았다.

그중의 하나가 김구선생이 사용하던 주석실이다. 그 방 앞에서 참았던 눈물이 솟았다.

상하이, 항저우, 자싱, 전장, 난징, 창사, 광저우 등 중국 각지를 전전하다가 겨우 충칭에 자리 잡은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임정요인들, 그리고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재산, 가족마저 돌볼 수 없었던 그분들의 험난한 생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생들이 보기 전에 얼른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그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눈에 물기가 남아있는 아우도 있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김구 주석실. (사진=김우영)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김구 주석실. (사진=김우영)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1990년대 초에 충칭 도시 재개발 계획으로 헐릴 뻔 했다. 그러나 한국-중국 두 나라 정부의 공동 노력으로 보존되어 1995년 8월 11일 정식으로 복원 개관했다고 한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훌륭하게 복원됐고 중국 정부가 잘 관리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는 썩 좋지 않지만 ‘고맙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었다.

중국에 갈 일이 있는 분들은 시간을 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들을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내가 이 만큼이나 나라와 역사를 깊이 사랑했던가?’ ‘잊고 있었던 애국심’도 되살아나게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