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72)] ‘회심(回心)’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5월 11일 지난 주 토요일에 구상(具常 : 1919-2004) 선생 묘소에서 선생을 추모하였다. 선종 20주기. 제례를 마칠 무렵이었던가. 낙동강, 선생이 1952년부터 1974년까지 관조하며 사색하였던 그 강과 천주교 왜관 창마묘역 사이로 한강으로 가는 열차가 쿵쾅쿵쾅 지나갔고, 긴 ‘그리움’과 ‘염원’ 같은 여운이 흰 구름 장대하게 핀 푸른 하늘에 맑고 맑게 감돌며 퍼졌다. 선생은 천주교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생의 전모를 살피면 일부에 불과하다. 이 나라의 정신사와 사상사, 언론사와 교육사, 종교사와 정치사에 두루 족적을 남긴 거인이다. 게다가 18년을 집권한 최고 권력자와 그 이전부터 친교를 나누며 남긴 공사구분 일화도 많고 모두 음미할 만한 의의가 있다. 선생의 시 세계, 우선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회심(回心)하기’, 즉 ‘과거의 생활을 뉘우쳐 고치고 신앙에 눈 뜨기’, 일반화한다면 ‘사악한 마음을 돌려서 착하고 바른 길로 마음 돌리기’가 아닐까 한다. 

 

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

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

 

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 사람을 만나면서 

옛 강과 옛 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 「그리스도 폴의 강 24」/구상

 

 1909년 이래 동숭동 천주교회와 베네딕도수도원을 지원했던 서울 양반 부모로부터 천주교 신앙을 이어받았던 선생은 식민지 청년 시절에 일탈과 방황이 없지 않았으나 오히려 신심이 깊어져, 20세기 파란굴곡 민족 현실을 신앙을 저변으로 하여 살면서 구도(求道)에 종사하였다. 이 시에서 경신(更新) 인지가 촉구된 ‘날마다’ 만나는 ‘새 사람’은 ‘우리’의 상대라기보다는, ‘우리’가 되어야 할 사람이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즉 이 문맥을 ‘우리’ 날마다 ‘새 사람’이 되자고 격려하는 자기서약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남이 늘 새롭게 개신(改新)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전제하고 또 그 변화를 바로 보고 인정하자는 의지는, 먼저 자신이 그러지 않는다면 성립하기 어렵고, 피력하기 부끄러운 소원이 아니겠는가.     

 ‘날마다’ 새로워지는 ‘새 사람’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리스도 폴’일 것이다. 희대의 장사(壯士)인 그는 무도한 패거리에 끼여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던 악당 중에서도 악당이었는데, 기독교도로 ‘회심’하여 강에서 사람들을 업어 건네주는 봉사를 시작하였고, 매일매일 오래오래 거듭하였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새 사람’이 되고, 강은 ‘새 강’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토록 존모하던 예수를 만난다. 아이로 화신한 예수, 점점 가중되어 천지와 같던 업은 아이의 무게를 가까스로 견디고 그는 강을 건넜고, 예수는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그에게 현신하였다. 그리스도 폴, 이 이름의 뜻은 ‘예수를 업고 강을 건넌 자’이다. 성인(聖人)이기도 한 그의 이 전설은 그저 신기하기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 부활 이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활뿐만 아니라 천국에 갔다가 이 지상에 돌아와 구원에 나선다고 천사들이 예고한 예수의 ‘재림(再臨)’과 관계있다. 『성경』에 기록된 삽화가 아니고 설화이기는 하지만, 기독교도들에게는 예수 재림의 앞선 증빙에 해당하기에 신앙 관련 개신(改新)의 존재론 성찰에서 거대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 시에서 화자는 다시 말해 그런 의의를 함축하기도 한 그리스도 폴의 ‘회심’을 무엇보다 자신에게 다짐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에둘러 은연 호소하고 있다. 이 호소가 아마 선생의 평생 ‘염원’의 하나일 것이다. 이 연작시의 첫 편이라 할 「프롤로그」에서 그리스도 폴에게 선생은 고백한다. “나도 당신처럼 강을/회심의 일터로 삼습니다. … //또한 나는 강에 나가서도 당신처럼 세상 일체를 끊어버리기는커녕/속정(俗情)의 밧줄에 칭칭 휘감겨 있어 꼭두각시 모양 줄이 잡아당기는 대로/쪼르르, 쪼르르 되돌아서곤 합니다.” 이 토로는 겸사가 아니다. 순연한 진정에 휩싸여 자신을 그대로 표백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의 진심을 위선으로 오해할 수 있는 세상의 인심을 헤아리기도 한 현명한 언급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진리를 각성하였다고 하더라도 진리대로 살지 않거나 살지 못하고 있다. 위선자가 있을 수밖에 없고, 갖가지 세속의 삶에 연관된 설득력 있는 변명도 많다. 따라서 이 토로는 우리의 심경을 그대로 대변하는 보편성이 없지 않다. 우리와 다른 점은 그럴수록 늘 ‘회심’을 잊지 않고, ‘되돌아서’는 시도를 언제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이 시의 ‘새 사람’에는 유학의 경전 『대학(大學)』이 출전인 탕왕(湯王)의 좌우명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 진실로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이 갈수록 새롭게 하라’가 내포되거나 병렬되어 있다. 선생의 집안 배경으로 보아 군자학(君子學)의 경전인 『대학』을 읽었을 수도 있고, 아니더라도 부조 이래 언행이나 지향의 하나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메시지가 전수되었을 것이다. 그날, 세의(世誼)가 있는 왜관수도원의 압빠스 박현동 신부가 참배객들에게, 선생 말년에 병실로 문병 갔더니 그 와중에도 “‘종가(宗家)’에서 ‘종손’이 왔네”라며 무척 기뻐하였다고 회고하였다. ‘종가’ ‘종손’이란 용어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생소할 테지만 유학 관련 전통을 잇는 사람들에게는 친근한 말이고, 지금도 생명력이 없지 않다. 천주교의 제례도 그렇지만 선생은 이 땅의 유학 전통과 천주교의 전통이 20세기에 조우하여 빚은 잘 도야된 항아리인 것이다. 그리고 선생이 주목한 강은 『논어(論語)』의 ‘서자여수(逝者如水)’와도 관계될 것이다. 공자는 강물을 주목하고 사색하며 도리를 깨달았다. “자재천상(子在川上), 왈서자여사부(曰逝者如斯夫), 불사주야(不舍晝夜).”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아마 선생은, ‘흘러가는 모든 것이 이 강물과 같아야 하리. 낮밤 그 어느 때에도 쉬지 않고 흐르네’라고 해석하고, 그 취지를, 유한한 시간이 예정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천부의 운명이구나. 그렇다면 저 물결처럼 옳은 신념과 불퇴전의 용기로 쉬지 않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라고 새기지 않았을까. 이런 추정과 생각 끝에 선생의 다음 시를 이어 읽어보자.   

 

내가 이 강에다

종이배처럼 띄워 보내는

이 그리움과 염원은

그 어디서고 만날 것이다

그 어느 때이고 이뤄질 것이다

 

저 망망한 바다 한복판일는지

저 허허한 하늘 속일는지

다시 이 지구로 돌아와 설는지

그 신령한 조화 속이사 알 바 없으나

 

생명의 영원한 동산 속의

불변하는 한 모습이 되어

 

내가 이 강에다

종이배처럼 띄워 보내는

이 그리움과 염원은

 

그 어디서고 만날 것이다

그 어느 때고 이루어질 것이다

             - 「그리스도 폴의 강 36」

 

 ‘회심’의 이유이자 목적이기도 할, 선생이 동시대인들과 후세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피력한 ‘이 그리움’과 ‘염원’은 무엇인가. 또 추정이지만 그리스도 폴이 선행 끝에 결국 조우한 재림 예수, 그 예수와의 상봉 기원에 관련된 정서와 의지가 아닐까. 재림 예수는 천주교의 모든 진리와 그 구극을 상징하는 기호라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럽지만 이는 선생 자신을 위한 기도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일 것이다. 

 사족 : 선생의 생애에서 강은 10대에 원산 덕원에서 바라보았던 적전강, 1952년부터 1974년까지 칠곡 왜관 관수재(觀水齋)에서 바라보았던 낙동강, 그 이후 서울 여의도에서 바라보았던 한강인데, 이 강들은 이 나라 역사와 같이 흐를 한반도의 모든 강의 제유로 그 표상들일 것이다. 그날 돌아오는 차중에서 선생의 강의를 같이 들었던 대학 동기 이진훈 전(前)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구상문학관에 진열되어 있던 한 편지를 촬영한 사진 파일을 보여주어 같이 읽었다. “구상 형. 완치하시고 귀국하셨다니 반갑습니다. 치병 간 쇠약하신 것은 한국 음식 많이 자시고 맑은 조국의 공기 많이 쏘이시면 쉬 회복되실 줄로 믿습니다. 도일 치료 기간 중 여러 가지 고초가 많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아무런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하여 죄스럽기만 합니다. 가난한 나라의 살림살이 누가 맡아봐도 힘이 들기만 합니다. 다만 조상들이 살고 갔고 우리 자손들이 영겁이 살아가야 할 조국이기에 생명이 지속되는 한 최선을 다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후 요양에 전념하시기만 기원합니다. 동장군이 찾아왔으니 월동 준비도 하셔야지요. 별첨은 약소하오나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보내드립니다. 소납(笑納)하시고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 편지의 발신인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11월 25일 박정희(朴正熙) 재배”[이 11월은 1966년의 11월] 1974년에 보안사가 ‘문학인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여 소설가 이호철, 문학평론가 김우종‧임헌영 등을 구속하자, 이들이 기대하지 않던 선생이 재판정에 증인으로 나와 이들의 무죄를 증언해 주었다. 선생의 그 친구가 이 사건과 재판을 어떻게 보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는데, 그 이후에도 선생과 선생 친구의 우정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