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 끝에 활짝 열린 청천(靑天)같은
어둠을 쓸어간 뒤 새 아침의 쾌청(快晴)같은
안경알 투명한 정을 나는 알고 사는가.
날마다 이맘때면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가
내 항상 버릇처럼 안경알을 닦는다만
진실로 닦아야 할 것을 나는 닦고 사는가.
유선 –안경알을 닦으며- 전문
유선 시인은 필자의 은사이시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셨다. 50년이 거의 다 되어가도,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암송해주시던 선생님의 음성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 쟁쟁하다.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하시고 말없이 교실 창밖을 내다보시던 선생님, 생을 통감하신 그 눈빛이 어린 소년으로 하여금 평생 시의 길을 걷게 하셨다. 필자뿐만이 아니다. 지금 수원에서 활동하는 여러 시인이 선생님의 직계 제자이다. 이경렬 시인, 이광호 시인, 김우영 시인, 최영선 시인, 이강석 시인, 최병기 시인 등이 수성고 재학 중에 선생님으로부터 국어와 문학을 배웠다.
살면서 우리가 닦아야 할 것, 닦아야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동사 ‘닦다’라는 말의 뜻은 ‘거죽에 묻은 물, 더러운 것 따위를 없애려고 문지르거나 씻거나 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몸이나 마음이나 행동을 다스려서 바르게 기르다’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안경을 닦으시는 일은 안경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일이지만 시를 다 읽고 나면 사실 그 일은 마음을 바로잡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지루한 장마 끝에 활짝 열린 청천(靑天)같은 / 어둠을 쓸어간 뒤 새 아침의 쾌청(快晴)같은 안경알 투명한 정을 나는 알고 사는가.’ 지루한 장마와 어둠이 단순히 자연 현상만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그런 걸림이 너무 많다. 안경을 닦는 일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가린 때를 닦는 일이기도 하다. ‘날마다 이맘때면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가/내 항상 버릇처럼 안경알을 닦는다만/진실로 닦아야 할 것을 나는 닦고 사는가.’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평소에는 안경을 안 쓰신다. 무엇을 읽어야 할 때에만 안경을 쓰신다. 늦은 밤이리라. ‘날마다’라고 하셨다. 오늘도 오늘치의 독서를 하지 않으시면 하루의 일과를 마치지 않은 것으로 여기심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전에 ‘버릇처럼 안경알을 닦’으시다가 ‘진실로 닦아야 할 것을 나는 닦고 사는가.’라며 당신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신다.
선생님의 고향은 충북 보은이시다. 교편을 잡으시면서 줄곧 경기도에서만 제자들을 길러내신 큰 스승이시다. 수원에서는 주로 수성고와 수원여고에서 교편을 잡으셨고 이포 중·고등학교 교장, 경기도 양평교육청 학무과장을 역임하시기도 하셨다. 성남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을 거쳐서 의왕중학교 교장 선생님을 끝으로 정년 퇴임을 하셨다. 필자도 물론 선생님의 정년퇴임식에 축하를 드리러 갔다. 강당을 메운 의왕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보다 어느새 중년이 된 옛 제자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선생님이 어떤 자세로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사랑을 베푸셨는지 넉넉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인으로서 수원 문단에 끼치신 영향 또한 지대하다. 그 공로를 기려 '제3회 경기문학상'과 '제1회 한국시조시인협회상' 그리고 '제1회 수원시인상' 등 이 짧은 글에서는 이루 다 기록할 수도 없음이 그 증표이다.
올해로 선생님은 미수(米壽)를 맞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 몇몇이 선생님을 모시려고 며칠 전 전화를 드렸더니 보은에 모내기를 하러 간다고 하셨다.
선생님.
못 모셔 섭섭하기도 하지만 선생님이 건강하셔서 제자들의 마음 자세가 ‘지루한 장마’와 ‘어둠’과 같을 때에 ‘활짝 열린 청천(靑天)같은’ 그리고 ‘새 아침의 쾌청(快晴)같은’ 가르침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모내기 끝내시고 올라오실 때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모이는 건 그때 모여도 되겠지요? 건강하십시오.
선생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