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문 막사발실크로드(63)] 장석원의 그림을 보면 존재 이유가 보인다
장석원 교수와 필자와의 인연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 교수는 공간지 편집장으로 글발 날릴 때이고, 이 무렵 필자는 지리산 장터목 산장위의 고사목 지대에서 '매장 그리고 발굴전' 퍼포먼스를 마치고 행사 사진과 자작글을 기고할 때이다. 그 때 공간지 사옥에서 만났다. 벌써 40년전의 일이라 기고했던 자작글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한참 지나 전북 도립미술관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후 필자가 근무하는 튀르키예 하제테페대학교 미술대에 장 교수를 초청,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특강을 가졌다.
그리고 한참동안 소식이 감감하다가 윤진섭 미술평론가의 페북에서 인천에 있는 KMJ 갤러리에서 장석원 초대전 소식을 접하고 너무 반가웠다.
각설하고, 장석원 그림의 '존재의 의미'가 먼저 내 시야로 들어 왔다.
눌러 쓴 모자가 사람의 눈동자가 피카소의 커다란 눈처럼 , 해맑은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성큼 걸어 나온다. 시대가 아무리 요동쳐 본들, 원초적 본능으로 다가오는 인간의 감성의 그늘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창의성의 가장 큰 적은 상식이다" 라고 한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 생각난다.
상식은 개나 줘라!
장석원 그림에 대해 바보 그림이라 세태를 풍자한다.
" 왜 ‘바보’를 그리는가? 기민하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 못하고 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는 바보. 그러나 바보에겐 발 빠른 현대인들이 추종하지 못할 매력이 있다. 당장 이익을 좇지 않아도 넉넉한 웃음이 있고, 현실 너머의 영원을 보는 눈이 있고, 삶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여기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웃에 대하여 따뜻한 눈길을 줄 수 있게 되고, 삶의 행보에 여유를 찾게 된다.
바보, 바보가 되면 편안해지고 존재 이유가 보인다. 내려놓아라, 그래야 보인다. 자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할수록 내려놓기 어렵지만,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문제가 풀린다."
장석원의 캐주얼한 긴 모자 창이 있는 그림이 나는 좋다. 시대를 바라보는 눌러 쓴 긴 모자 창 사이로 돋보이는 사람의 커다란 눈동자는 천연, 피카소의 눈이다.
가끔 필자는 화가 장석원의 상식을 깨는 퍼포먼스를 음미한다.
'I LOVE YOU' 'I HATE YOU'. 서로 상반되는 모순의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기생한다. 삶처럼 모순된 것도 없다.
소피스트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에게 당한 것처럼, 모순덩어리의 삶 속에 우리는 늘 노출되어 있다.
AI가 만연하는 인간의 삶은 온전한가? 이런 통렬한 결혼 퍼포먼스 작가 장석원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졌다.
'I LOVE YOU' 'I HATE YOU'. 그야말로 상식을 깨는 존재의 의미 퍼포먼스이다.
아랫글은 윤진섭 미술평론가의 페이스북에 기고한 글을 인용했다.
'인천시 남동구 인주대로 543에 위치한 KMJ ART GALLERY에서 열리고 있는 장석원 초대전에 다녀왔다. 70년대 실험미술 그룹 ST의 회원인 장교수는 일찍이 이건용, 김용민, 성능경과 함께 퍼포먼스의 일종인 이벤트를 시도하였으며 평론가로 데뷔, <공간>지의 편집장을 거쳐 전남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광주비엔날레 학예실장(2000)과 예술감독(2004), 전북도립미술관장(2014-7)을 지냈다.
인물화를 즐겨 그리는 장석원의 화풍은 대상의 묘사보다는 아동화 같은 스타일로 대상의 특징을 따 간략히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종의 '바보' 인물화인 셈이다. 중광 스님을 좋아하여 여러 차레에 걸쳐 중광론을 쓰기도 하였다.'
장석원 교수는 2020년5월 전북일보에 '미술 인문학' 누더기 옷에 고장난 시계, 중광에 대해 글을 올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이슬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리라." 시 ‘귀천’을 쓴 시인 천상병은 희대의 기인으로 알려진 중광스님을 봤을 때의 인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비록 누더기 옷을 걸치고 가슴에 고장난 시계, 머리에 쓴 모자에 울긋불긋 달린 장식들, 그 모습이 우습다고 보이지만 어느 곳이든 어느 하늘 아래를 활보한들 떳떳한 그 모습, 그 웃음 앞에는 누가 말할 자 있을까? 스님과 나는 언제나 서로가 형님과 도사가 엇갈리는 대화가 있을망정 마음 속으로 보살님이니 우린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것이다.”
반대로 중광은 천상병 사후 낸 책에서 그를 이렇게 기리고 있다.
“천상병 시인은 자식도 하나 없고/ 이렇다 할 재산도 없어도/ 맥주값 500원이면 이 세상을 넉넉하게 살다 가신 도인이었다.”
내가 아는 중광은 세상을 걸림 없이 통 크고 멋지게 살다 가신 도인, 예술가였다. 미국의 불교학자 랭커스터 교수가 그를 발견하고 ‘미친 중’이라는 책을 펴내 그의 선 사상과 예술을 소개하자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종로의 감로암 그의 거처는 벽과 천정까지 낙서 투성이였는데 술이 취해 귀가를 하려 대문을 나서자 나를 불러 세우더니 바로 달마도 한 점을 달빛에 비추며 깔깔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머리에 성기를 달고 있는 달마였는데 전남대 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던 작품이다.
이제 중광 스님도 가신지 18년이 된다. 그가 생전에 썼던 시 <허튼 소리·3> 을 보면, “우리집 개는 불교를 믿고/ 우리집 고양이는 예수교를 믿고/ 우리집 향나무는 유교를 믿고/ 우리집 우물은 무당을 믿고/ 나도 가갸거겨 또 가갸거겨/ 너도 가갸거겨 또 가갸거겨”가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가장 통렬하게 열린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글만 쓰지 말라고 물감을 상자에 가득 담아 주시고 전시회 때는 싱글싱글 웃으며 품평을 해주시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천당과 극락을/ 오른쪽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닌다/ 양심은/ 하늘에 걸어두고/ 이슬처럼 따먹는다”고 노래 했던 그는 임종에 앞서 “나 죽거든 절대 장례식 하지 마라. 가마니에 둘둘 말아 새와 들짐승이 먹게 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렇게 떠나지 못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인생이다.
■ 작가 장석원
전북 김제 출생으로 1975년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 1977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3년 공간사 편집장, 1984년 전남대 교수, 1995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2000년 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 2004년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2014년 전북도립미술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평론집 ‘소통의 비밀’, 미술 에세이집 ‘아름다운 착각(2014)’, ‘순간과 영혼(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