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아침묵상] 내 삶을 이끌어 준 10가지 말씀(48)
나라가 세운 병원도 교회가 세운 병원도 훈이 엄마 한 사람 받아 주는 곳 없는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그냥 휘발유 뿌리고 불 질러 버리고 싶은 마음이 솟았습니다.
한참이나 훈이 엄마 곁에 멍하니 앉았다가 죽은 사람을 끌다시피 하여 판자촌으로 갔습니다. 업고 가다 힘들면 끌고 가다 정신 줄을 놓고 걸었습니다.
한양대학을 지나면 뚝섬으로 나가는 다리가 있습니다. 성동교란 다립니다. 다리 중간쯤에 이르러서는 더 갈 수 없도록 기운이 떨어져 다리 난간에 시체를 걸쳐 놓은 채로 그 곁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미 어두워져 헤드라이트를 켠 채 오고가는 자동차들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시간을 잊어버린 채 앉아 있는 동안에 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리는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 귀에, 내 가슴에, 내 영혼에 들려오는 세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너 등에 죽은 그 여인이 십자가에 죽은 나 예수다."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죽은 여인 곁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절하며 말했습니다.
"예수님, 나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 알겠습니다. 예수님을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그리고는 성동교 다리 위의 가로등 불빛 아래서 성경을 펼쳐 다음 구절을 찾아 읽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습니다.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겠습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57편 7절과 8절)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다짐하였습니다. 이런 어두운 역사에서 새벽을 깨우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서럽고 슬픈 영혼들을 위하여 희망의 새벽을 깨우는 그릇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나의 사명이 되었고 나의 삶의 목표가 되었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나는 훈이 엄마를 두 팔에 안은 채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날이 새자 장례를 할려니 비용이 없었습니다. 신학교로 가서 호주 선교사인 변조은(John Brown)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영감이 넘치는 강의로 신학도들인 우리들에게 감화를 주는 분이었습니다.
나는 변조은 선교사를 만나 "한 여인의 장례를 치러야겠는데 시체를 화장터로 싣고 갈 비용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교수님의 랜드로버 짚차를 하루만 빌립시다."
변 선교사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면서 당일에 쓰라고 금일봉까지 보태 주었습니다. 다음 날 나는 훈이 엄마의 3남매와 함께 벽제에 있는 서울시립 화장터로 갔습니다.
훈이 엄마는 짚차 뒤칸에 싣고 3 남매와 함께 화장터로 갔습니다.
벽제 화장터에 도착하여 화장하는 절차를 밟으려 하였더니 남자 몇이서 앞을 가로막으며 여기서는 화장할 수 없노라고 굳은 얼굴로 말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