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대승원 귀룽나무...“흰구름 한 덩이 이 절집에 내려 앉았구나”
팔달산 산책길에 가끔 들르는 곳이 있다. 대승원이란 절집이다. 도로명 주소는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26번길 38. 지번은 팔달구 남창동 56-3번지이다. 화성행궁주차장에 주차 후 바로 옆길로 걸어 올라가면 대승원으로 갈 수 있다.
불자는 아니지만 조부모나 부모, 장모 등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가끔씩 양초 한 자루, 작은 쌀 한 포대를 올린 후 삼배를 하기도 한다.
대승원은 수원의 팔달산 동쪽 기슭에 자리해 있으며 조계종이나 태고종 등 한국 불교의 종파에 속해있지 않고 불교사상연구회와 사찰을 겸하고 있다. 절집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19m 크기의 황금빛 불상으로 유명하다. 화성성안 어디서나 눈에 잘 띄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대승원의 미륵황금불상이 옆에 있기에 뭔가 축복받고 보호받는 것 같은 좋은 기운이 들어 현재 집으로 이사를 결심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높이 서있는 황금빛 불상이 수원시내를 굽어보고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행궁동 마을 대소사에도 열심인 황영 대승원 사무국장은 사찰 북쪽 입구에 있는 나무를 보여주겠다고 나를 이끌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귀룽나무와 계수나무가 있었다. 귀룽나무 둘레는 2m가 넘는 것 같았다.
북한산성 태고사 입구의 수령 160년, 높이 23m, 둘레 2.3m의 거목 귀룽나무가 고양시 보호수로 지정돼 있어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나무도 그에 못지않은 거구를 자랑한다.
서안나 시인이 이 나무를 보고 「그늘의 질량」이란 시를 써 2013년 계간 『작가세계』에 발표했다.
아홉 마리 용이 한그루 꽃나무를 피운다는 대승원 귀룽나무
나무 그늘에 나무 한 그루가 다 들어있다 그늘의 한쪽을 막으면 고요다
그늘을 자르면 지상에 도착하지 못한 수런거리던 흰 꽃이 어란(魚卵)처럼 가득하다
귀룽나무 백 년의 그늘을 다 밟은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 몸 안의 캄캄한 골목을 다 건넜다 분홍 발바닥 근처 상처 난 그늘을 핥는다
그늘을 열고 그늘을 굴리고 그늘을 논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등허리에 어룽거리는 그늘의 손바닥 혓바닥처럼 축축하다 고양이가 그늘을 몰고 다닌다 그늘마다 미지근한 꽃이 핀다
명부전 금강경을 머리에 얹은 염라대왕 이마까지 꽃잎이 다 번졌다 그늘은 머리와 꼬리가 분별이 없는 꽃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열렸다 그늘이 무량하다
아마도 2013년 여름 행궁동 일원에서 열린 ‘화성행궁 수원 여름시인학교’에 온 시인이 대승원을 방문했다가 귀룽나무를 보고 시상을 떠 올린 듯하다. 화성행궁 수원 여름시인학교는 대승원과 멀지 않은 남창초등학교를 졸업한 최동호 시인이 이끄는 사단법인 시사랑문화인협의회가 주최했다.
귀룽나무 이름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북등 같이 생겼다 하여 귀(龜)자가 붙었다(귀룽나무는 줄기가 굵고 가지가 길어 무성하게 뻗으며 아래로 쳐지기 때문에 위쪽이 둥그스름해지는 형태다)”, “아홉 마리의 용이 휘감겨 있는 모양 같다고 하여 구룡목(九龍木)”, “꽃이 활짝 피면 구름처럼 보인다 해서 구름나무라 불렀는데 ‘구름’이 나중에 ‘귀룽’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를 검색해보니 귀룽나무는 높이 15m 정도 자라는 큰 키나무로서 꽃이 필 때는 나무 전체가 백색 꽃으로 뒤덮인다.
전국 계곡 인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수원에서는 흔하지 않아서 낮 설었다.
황 사무국장으로부터 대승원 귀룽나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꽃이 필 때 다시 한 번 찾아가 보았다. ‘아하, 이래서 구름나무라고 했구나’ 저절로 감탄성이 터진다. 나무 전체에 새하얀 구름이 내려온 것처럼 핀 꽃이 장관이다.
향기 또한 아카시아 향처럼 청량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작고 하얀 꽃들은 몽환의 세계로 이끈다. ‘향은 멀리서 맡고, 귓속말하듯 가까이서 보라’는 어떤 사람의 말이 옳다. 귀룽나무의 꽃말은 ‘사색’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향기 속에서, 이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꽃들 아래서 사색할 자신이 내게는 없다. 꽃말을 지은 이에게 미안하다.
대승원 귀룽나무 옆에는 제법 오래된 계수나무가 있다. 대승원 창건자인 고봉 스님이 인도에서 가지고 와 뒤뜰에 손수 심었다고 한다. 고봉스님이 가장 아끼던 나무로서 태풍이 부는 날 대승원에서 가장 먼저 살펴보았다고 한다.
최동호 시인은 2012년 불교신문에 고봉스님과의 인연, 대승원 계수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이글에서 ‘그분’은 고봉스님이다.
‘(전략)...대승원의 금빛부처의 미소를 경건하게 친견한 다음 뒤뜰로 가보니 거기에는 잎이 무성한 계수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계수나무 아래에는 설법의 장소에 어울릴법한 아담하고 적요한 공간이 있었는데 팔달산을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전에는 모르고 있었던 내밀한 소통의 공간이 나무 그늘을 만들어 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이곳에서 시를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간청을 주지인 수산스님에게 부탁드리고 몇 몇 학생들과 시를 읽어 보았다.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바로 이 공간이야말로 내가 오래도록 안식을 바라던 바로 그런 장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름 계수나무의 잎사귀는 한없이 푸르다. 머지않아 단풍에 물들 것이고 겨울의 비바람을 맞으며 앙상한 나무가 될 것이다. 다시 봄이 되면 계수나무는 새싹을 틔울 것이다. 물든 잎사귀를 날리며 계수나무는 검고 작은 씨앗을 지상에 뿌릴 것이며 지상에 떨어진 그 열매가 썩지 않는다면 그 열매는 자라면서 자신의 그늘을 펼치고 사람들에게 안식의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후략)’
앞에서 밝힌 대로 이 계수나무는 고봉스님이 인도에서 가지고 와 심은 것이므로 나이가 이 절의 역사와 거의 같을 것이다.
고봉스님은 왜 이 계수나무를 인도에서 가져다 여기에 심었을까? 스님도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그곳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나무란 이미지가 각인됐을 것이다. 더욱이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 마주한 계수나무의 느낌은 더욱 강했을 것 같다.
아무튼 최동호 시인의 글처럼 이 나무 아래서 발길을 멈추고 모든 인연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