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7)] 전대호 '십이 년을 먹였더니'

김준기 시인

 

십이 년을 먹였더니

보람이 있구만.

아들놈이 견갑골에 파스 붙여줄 때

흐뭇하게 한 마디.

 

십이 년을 먹여놓았는데 이 꼴이면,

하이고, 제구실 하겄나.

아들놈이 까먹고 방치한 온갖 껍질

치우며 심각하게 한 마디.

 

문득 구원처럼 떠오르는 옛날 집터 유적.

아무 데나 마구 버려놓는 놈들이 없었다면

무릇 유적은 훨씬 더 빈곤했으리.

 

십이 년을 먹였더니

이놈이 유적을 조성하고 있었구만.

까마득한 후손까지 배려할 만큼 철이 들었는가.

십이 년은 더 먹여봐야겠어.

꾹 다문 입으로 고개만 끄덕끄덕.

                          전대호 -십이 년을 먹였더니- 전문

 

어느 집에나 한두 개쯤 있는 물건이 효자손이다. 그저 대나무 막대기인데 손이 닿지 않는 등이 가려울 때 요긴하게 그 가려움을 해소해 준다. 그것이 마치 등을 긁어주는 효자의 손과 같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등에 파스를 붙이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시인도 어느새 훌쩍 중년의 고개에 서 있다. 오십견의 후유증인지 견갑골이 뻐근하다. 어떻게든 혼자 파스를 붙여 보려 하는 데 초등학교 졸업반의 아들이 성큼성큼 걸어와 쉽게 그 일을 단번에 해결해준다.

위의 시는 지난 5월 1일 상재한 전대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내가 열린 만큼 너른 바다』에 실린 시이다. 전대호 시인은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동 대학원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금으로 퀼른에서 헤겔 철학을 공부하고 귀국 후에는 주로 과학과 철학에 관한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철학은 뿔이다』 그리고 『정신현상학 강독Ⅰ』과 『정신현상학 강독Ⅱ』를 펴낸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이력을 보면 언뜻 그의 시가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을 지니기가 십상이다. 그렇지 않다. 시는 시여야 한다. 전대호 시인의 시에 흐르는 맑은 심성의 서정을 읽을 때 그는 천생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시는 때로는 일상에서 얻는 잔잔한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위의 시도 그런 시이다.

‘십이 년을 먹였더니/보람이 있구만./아들놈이 견갑골에 파스 붙여줄 때/흐뭇하게 한 마디.’ 흐뭇하다. 십이 년을 키운 보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도 잠시이다. 학교를 가고 빈 방에 들어가 보니 이것저것 치우고 정리할 일이 많다. ‘십이 년을 먹여놓았는데 이 꼴이면,/하이고, 제구실 하겄나./아들놈이 까먹고 방치한 온갖 껍질/치우며 심각하게 한 마디.’ 걱정이 앞선다. 그러다가 ‘문득 구원처럼 떠오르는 옛날 집터 유적./아무 데나 마구 버려놓는 놈들이 없었다면/무릇 유적은 훨씬 더 빈곤했으리.’라고 시인은 자신의 열두 살을 반추해 본다. 그렇다. 우리네 삶이 쓸쓸하지 않도록, 튼튼하게 이어주는 끈이 바로 그 유적이다. 그리고 ‘십이 년은 더 먹여봐야겠어./꾹 다문 입으로 고개만 끄덕끄덕.’이라며 시를 맺는다. 

그런데 전대호 시인. 내가 십 년쯤은 먼저 살면서 자식을 키워봤으니 장담하네. 십이 년 후에도 그 형태와 크기만 바뀔 뿐 아들놈이 버린 껍질은 여전하여 때로는 가슴이 아리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시인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일종의 화두처럼 던진 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문득 구원처럼 떠오르는’이라 하지 않았는가. 모든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한 ‘구원’이며 우리의 내일이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믿음이기에.

시인은 시집 첫머리에서 ‘넷째 시집을 낸다./가까스로 첫걸음쯤은 될지,/시인으로 종신(終身)하겠다는 약속/꼭 지키고 싶다.’라고 했다. 등단 삼십여 년을 넘기고 네 번째 시집을 내면서도 ‘첫걸음’이라며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시인으로 종신(終身)하겠다’는 서언(誓言)이 아름답다. 전대호 시인. 새 시집을 나신 지 채 한 달이 안 되었군. 다시 한번 축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