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유원지요? 수원에 그런 유원지도 있나요?”
분명히 원천유원지와 함께 광교유원지가 있었다.
수원에 광교유원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는 ‘나이 먹은 수원사람’이다.
1922년 7월 을축년 대홍수가 발생했다. 이 때 화홍문과 남수문이 유실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전에도 큰 비만 오면 수원천변 주민들은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그 때마다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수원천 상류에 제방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당시 일제강점기 수원군에서도 광교에 댐 건설계획을 수립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제방건설이 추진된 것은 을축 홍수로부터 10년이 지난 1932년이었다. 3년을 계획으로 시작됐으나 예산부족에 더해 큰비가 자주 오게 됨에 따라 2년이 더 경과되어 5년만인 1937년 제방공사가 끝났다.
1945년 8.15해방 이후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어 1950년 발생한 6.25 전쟁으로 많은 피난민들이 수원에 몰려들어 급격히 인구가 증가했다.
이로 인해 생활용수 부족현상이 발생했고 수원시는 1953년 11월 광교저수지를 상수도 용수로 전환하는 상수도사업인가를 받게 된다.
수원시는 제방아래 하광교동에 취수·정수시설을 갖춰 수도사업소를 설치하고 1954년부터 수돗물을 공급했다.
이 때 여수토(물넘이뚝) 아래 하천에 어린이 풀장을 만들었는데 주변에 플라타너스 나무와 등나무를 많이 심어 그늘을 조성했다. 이곳은 수원의 어린이들이 여름이면 반드시 찾아야하는 명소가 됐다.
6.25 전쟁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시민들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1958년 광교저수지 제방을 높이는 공사가 시작됐고 1962년 완료됐다. 1967년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온 이후 수원 인구는 더욱 증가했다. 이에 수원시는 저수량 증대를 위해 1967년 제3단계 제방숭상공사를 마무리했고 수원은 당분간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이즈음 수원에서는 수영장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광교저수지 수량도 여유가 있게 됨에 따라 광교저수지 물을 이용해 제방 밑에 수영장 건설계획을 수립했다. 수영장은 1972년 7월 1일 문을 열었는데 수원에서 50m 정규 수영장은 처음이었다.
1972년 필자는 수원공고 토목과 2학년 학생이었다. 측량시간에 박승남 선생님은 광교저수지 제방을 측량하고 새로 개장한 수영장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광교제방 아래는 플라타너스와 등나무 그늘, 어린이풀장, 수영장이 있어 수원시민들은 이곳을 ‘광교유원지’로 불렀다.
당시 광교유원지는 봄이면 수원시내 학교의 소풍장소가 되었고, 5~6월 딸기철에는 젊은이들의 데이트장소가 되었다. 여름철에는 수영대회가 열렸는데 당시 아시아 금메달리스트인 조오련 선수의 시범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1970년대는 이렇다 할 집회장소가 없던 시절이라서 각종 모임은 물론 투견대회, 복싱대회, 노래자랑 등이 진행됐다. 겨울에는 썰매 타는 장소가 됐고, 물이 넘치지 않을 시기에는 축구장이 되기도 했다.
광교수영장이 문을 연지 10년이 지날 무렵 수영장을 민간인이 운영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필자는 수원시가 언제, 어떤 이유로 광교유원지를 매각했는지를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으나 알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장안구청 토지관리과에 문의한 결과 1981년 4월 21일 000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교유원지가 매각된 것은 수원시민들에게는 불행이었다. 광교수영장을 불하받은 소유자 000는 1992년 당시 수익이 많은 골프연습장을 조성하기 위해 울창한 플라타너스 나무와 등나무 등을 벌채하기 시작했다.
연무동 주민과 광교산 등산객들은 광교유원지가 훼손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수원시에 민원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광교유원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최00의 증언에 의하면 수원시로부터 “지목이 잡종지인 사유지여서 수원시가 막을 방법이 없어 골프연습장 신고를 받아주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수원시가 이를 막아내지를 못하자 숲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수원시의회는 ‘광교골프연습장 및 종합체육시설 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에 들어갔다.
‘광교골프연습장 및 종합체육시설 조사 특별위원회’는 국공유지 무단점유사항 개선과 광교유원지 구역을 도시계획법에 의해 공원으로 지정하여 광교유원지로 환원할 것을 권고했다.
수원시는 수원시의회의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공원 지정을 추진했으나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부결시켰다. 이렇게 하여 광교유원지는 골프연습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광교유원지의 두 번째 사건은 2003년 1월 10일 발생했다. 광교유원지(광교수영장) 운영자는 골프연습장보다 수익이 많은 8층의 상가건물을 건축하기 위해 수원시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수원시 건축부서는 건축법에 결격사유가 없다는 사유를 들어 건축허가를 해주었다.
그러자 1993년 골프연습장을 짓기 위해 플라타너스와 등나무 등을 훼손할 때처럼 연무동 주민과 광교산 등산객들은 강력한 민원을 제기하고 나섰다. 집단민원이 발생하자 정부합동민원실(행정안전부)은 수원시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여 건축부서 담당들에게 건축허가의 부당함을 이유로 징계처분을 내렸다.
수원시는 과거 광교유원지 구역을 공원화 사업을 위해 도시계획법에 의한 공원으로 지정했다. 이렇게 되자 상가를 짓기 위해 건축허가를 받은 소유자는 수원시를 상대로 사유재산권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사유를 들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광교유원지와 관련해서 계속 문제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감사원이 나섰다. 감사원은 건축허가에 문제점도 있으나 도시계획부서에서 공원으로 지정하지 않고 1종 주거지역으로 변경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현재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고 징계처분을 할 경우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소송확정 이후 징계를 시행하라고 조건을 달았다.
이는 참으로 어이없는 처분이었다. 수원시가 공원을 지정하겠다는 것을 부결함에 따라 그나마 일반주거지역(높이제한 없음)을 4층 미만으로 지을 수 있는 1종 주거지역으로 변경한 것임에도 도시계획부서의 해명을 듣지 않았다. 당시 담당과장은 이 건으로 인해 2년 반 동안 국장 진급을 하지 못했다.
수원시는 1981년 헐값에 매각한 토지를 24년이 지난 2005년에 매입하여 광교공원을 조성했다. 팔았을 때 받은 가격의 몇 십 배로 사들였다.
광교공원은 이해할 수 없는 행정행위로 말미암아 인근 주민의 휴식공간을 사라지게 하고 결국에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재매입함에 따라 국가예산을 낭비한 사례였다.
광교공원에는 야외음악당과 2층 주차장, 팔달산에 성신사를 복원하기 위해 이전한 강감찬 장군 동상, 어린이풀장 자리에는 춤추는 분수와 잔디광장이 조성됐다.
현재 광교저수지 제방엔 금계국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다음 주면 금계국이 절정을 이룰 것같다. 늦기 전에 호사를 누려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