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74)] ‘가장/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차라리 고향으로라고 해야 할까. 때가 되면 누구나 돌아가야 하는 그곳으로, 홀로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어도 결국 혼자 떠나가는 가는 그 노정(路程), 그래서 미리 생각해둔다면 삶을 더욱 사랑한 나머지 그 준비일 것이고 때가 되어도 어떤 후회가 적을 수 있겠다. 지쳤기도 하지만 여전히 주변과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다가 아마 어느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날, 문득 가슴 저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무성한 말을 가려 적었을 것 같은 시가 있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낙타」/신경림(1935-2024)
화자가 동반자로 낙타를 선택한 이유는 낙타에게서 무언가 직관하였기 때문이다. ‘세상사’ 이모저모에 ‘아무것도 못 본 체’하고 싶어졌고, 그러다 문득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을 낙타’가 상기되어 그 낙타와 같이 그 길을 가겠다고 한 것일 것이다. 지기(志氣)가 상통하는 좋은 사이, 그 길에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그런데 이 시는 그 길을 전제하면서도 처세의 시이기도 하다. 또 낙타처럼 그렇게 절제하는 것이 아무래도 낫겠다고 여기는 이유가 언급되지 않아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세상사’의 부조리와 모순, 복잡하고 번거로운 그 이해와 애환이 무미하기도 하여 구애되지 말아야겠다고 두루 통찰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에서 ‘듯’을 주목하며, 세속의 그 ‘슬픔’과 ‘아픔’을 여전히 외면하거나 망각하지 못하는 화자의 자의식을 바로 화자의 애매하지 않은 그 진술로 하여 잘 알 수 있다. 이 뜻에서, 우리는 또 화자가 세속 삶의 한계를 살폈고 그것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용인하기를 저어한다는 절조도 읽을 수 있다.
이 시는 독자에게는 화자의 독백이면서도 화자에게는 독백이 아니다. ‘세상사 물으면’에서 알 듯, 떠나온 세상의 ‘세상사’를 묻는 ‘누군가’와의 대화를 상정하고 있다. ‘누군가’가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이라 가정하였는데, 췌언이지만 자신에게 그러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뜻을 ‘누군가’에게 확고하게 피력하려는 취지의 설정이다. 화자는 언명한다. 아예 낙타로 가서,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다시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분명히 해두자. 전생 전신이 사람인 ‘낙타’가 업고 돌아올 ‘사람’은 역시 ‘별과 달과 해와/모래만 보고 살다가’ 종장을 맞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가엾은 사람’이다. ‘별’과 ‘달’과 ‘해’와, 그리고 ‘모래’가 무엇의 비유인지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좀 판명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또 우리는 그 물성을 알기에 이미 짐작하고 있다. 어두운 하늘에서 고고히 빛나는 그것들과 끝없이 황막한 지평의 박토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생각 없이 오직 그것들만을 바라보고 그 위를 터벅터벅 걷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또 우리는 느낀다. 그 ‘누군가’에게 건네는 화자의 말, 그 정조와 어조에는 염세나 증오의 파편이 개재되어 있지 않고, 동정과 사랑의 온유한 빛이 은은 배어 있다는 것을. 이 면모가 그 무엇보다도 이 시의 우선 특질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시 새겨야 하겠다. 저승 가는 사막의 길, 그 길에서 그 ‘낙타’가 업을 ‘가장 가엾은 사람’은 그 무리 중에서도,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사족 : 그 ‘어리석은 사람’이 대지약우(大智若愚 :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 같다)의 인물이라면, ‘무슨 재미’는 세속의 분분 자욱한 명리(名利)가 아닐까. 『농무』(1973)와 『낙타』(2008)의 대시인 신경림 선생이 지난 5월 22일 별세하였다. 선생은 병석에서 시를 쓰지 못하는 상태를 유감스러워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제 「낙타」를 미리 쓴 최근의 유작으로 알려한다. 이 시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반복처럼 보이면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화자와 낙타도. 아무래도 서로 다른 서사가 함축된 채 더욱 은밀하다고 여겨져서인가. 또 선생의 1956년 데뷔작 「갈대」와 오랜 세월 간극이 있고 외부 상황에도 변화가 있었는데도 「낙타」에는 「갈대」의 모습이 원형으로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한 자기응시의 정일한 내성 시선과 반짝이는 척박한 삶에 묵묵히 종사한 이력에 고개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