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8)] 김애자 '바지랑대'

김준기 시인

 

대가족 벗은 옷들 손으로 비벼 빨아

꼭꼭 짜서 양지바른 앞마당에 널고 나면

그 무게 혼자 못 이겨 늘어지던 빨랫줄

 

장대 끝에 대못 박아 빨랫줄 걸쳐놓고

힘주어 세워주면 탄력으로 높아지던

아슬한 꼭대기에는 잠자리가 늘 쉬다 갔지

 

약에 쓸 힘도 없다시던 저물녘 엄마처럼

사는 일 힘에 겨워 진 빠지고 늘어질 때

무거운 헌 몸 받쳐줄 바지랑대 있었으면

                                김애자 '바지랑대'  전문

 

외래어도 아니고 아예 외국어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다방이 사라지고 외국어로 된 커피숍 체인점들이 그 몫을 대신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메뉴판에는 어김없이 역시 외국어로 된 음료 이름들이 빼곡하다. 그중에서 카페라떼, 녹차라떼, 등등 무슨 ‘~라떼’라는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유를 첨가한 음료라 한다.

그런데 우유라는 뜻을 지녔다는 이 말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묘하게 쓰이는 경우가 있다. ‘라떼는 말이야’가 그 말이다. 주로 직장에서 상사가, 혹은 수업 중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하다가 ‘나 때는 말이야’ 혹은 ‘예전에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경우를 비아냥거리는 표현이다. 즉 무슨 이야기를 할 때 그렇게 시작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요즘 흔히 말하는 이른바 ‘꼰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간 이야기를 할 때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명사들을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예전에는’으로 시작해야 한다.

바지랑대도 그중 하나이다. ‘예전에는’으로 시작하자. 예전에는 어느 집이나 마당을 가로질러 빨랫줄이 걸려 있었다. 늘 크고 작은 빨래들이 햇살을 받으며 그 빛으로 그 집 아낙네의 살림 솜씨를 가늠하게 해주기도 했다. ‘대가족 벗은 옷들 손으로 비벼 빨아/꼭꼭 짜서 양지바른 앞마당에 널고 나면/그 무게 혼자 못 이겨 늘어지던 빨랫줄’ 예전 마당에 걸려 있던 빨랫줄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식구는 좀 많았나. 그 많은 빨래를 일일이 손으로 비벼 빨아 널려면 그 무게를 중간에서 받쳐줄 장대가 필요했다. ‘아슬한 꼭대기에는 잠자리가 늘 쉬다 갔지’라고 여름날의 마당을 회상한다. 잠자리를 잡으려는 개구쟁이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바지랑대 끝의 잠자리는 여유롭게 앉아 날아갈 생각조차 안 한다. 병아리를 쫓던 삽살개도 제풀에 지쳐 담장 그늘에 엎드려 졸고 있다. 그 적막하기까지 한 여름날의 고요와 평화를 우리는 이제 만날 수가 없다.

위의 시는 2022년에 김애자 시인이 낸 시조집 『환승할 역이 없다』에 들어있는 ‘바지랑대’의 전문이다. 시인의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다. 숙녀의 나이를 함부로 말하는 것은 큰 실례이기에 밝힐 수는 없지만, 가끔 6.25때 피난 가던 이야기를 하시니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춘천사범학교를 졸업하고 35년간 초등학교 교편을 잡으셨다. 그야말로 그 당시는 그 지역 최고의 수재들이 들어가는 학교가 사범학교였다. 1989년 『시대문학』에 수필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2001년 『예술세계』에 시가 당선되어 다소 늦깎이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 경우가 있다. 등단이라는 요식행위를 거쳐 시인이 되지만 이미 그 생애 자체가 시인의 길이었기에 늦게 등단을 하여도 그 시들이 한결같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시인. 김애자 시인이 그런 시인이다. 그리고 강원도가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올해의 경기문학인상’, ‘수원문학상 작품상’, ‘경기시인상’, ‘경기펜문학 대상’, ‘수원시인상’ 등을 수상하며 수원을 지켜온 수원의 시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애자 시인이야말로 수원시단에 ‘바지랑대’같은 시인이다. ‘약에 쓸 힘도 없다시던 저물녘 엄마처럼/사는 일 힘에 겨워 진 빠지고 늘어질 때/무거운 헌 몸 받쳐줄 바지랑대 있었으면’이라 했지만 본인이 그 바지랑대라는 사실을 정작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 이런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김애자 시인은 요즘 젊은 사람들의 용어로 약간 ‘츤데레’ 타입이시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바지랑대처럼 언제인지 모르게 옆에 와서 아무 말 없이 받쳐주신다.

선생님. 많은 것이 바뀐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주거 양식이 바뀌어 빨랫줄이 걸린 마당을 볼 수가 없습니다. 시골에서도 그 누구도 손빨래를 하지 않습니다. 세탁기로 빨아 베란다 건조대에 걸려 말립니다. 아니 아예 건조기로 말려 차곡차곡 서랍에 넣으면 그만입니다. 편하고 효율적인 변화를 거부하거나 탓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바지랑대 깃든 그 정신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입니다. 머지않아 시원한 마실거리가 생각나는 저녁이 오겠지요. 선생님 시 한 편 빌려 쓴 값으로 시원한 생맥주 한잔 사겠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우리네 마음속에 그리는 고향집 마당에 바지랑대가 서 있고 여름날 저녁 햇살 비낀 그 꼭대기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 앉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