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75)] ‘고개 든 채 잠든 오령의 멧누에’
염치와 덕행이 정략과 패권으로 쇠약해진 시대, 아니 증오와 배타로 패도와 기만을 흔히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삼는 세태에서, 어떤 행로에 이어 어떤 경계에 이제 섰다는 이야기는 일단 우리를 주목하게 한다. 아무래도 긍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추구할 것이란 기대로. 미성의 영역과 성취의 영역으로 두 세계를 확연히 나누는 설정부터가 이미 잃었다가 되찾은 추억과 같은데, 길고 긴 오미(五味)의 구절양장(九折羊腸) 길을 걷고 걸어왔을 작중 화자는 황혼을 넘긴 한 밤, 드디어 그 접점에 자신의 몸을 세운 것이다. 그 너머, 이제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를 그 영역으로의 진입은 단 한 행보면 가능하다. 그런데 그러자말자 상황이 좋지 않다.
나는 밤의 현관에 서 있는 사람
현관에 고인 찬바람 속의 사람
한 발은 안에
한 발은 밖에
가물가물 걸치고
가만히 서서 발에 물집이 잡히는 사람
고개 든 채 잠든 오령의 멧누에 꿈속처럼
무릎 없이 변모를 기다리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 「현관」/강기원
온갖 곡절의 여정을 거쳐, 생략된 집으로 환유된 그 영역의 앞에 이르렀는데, 그 집의 ‘현관’은 열려 있지 않고 굳게 닫혀 있다. 이런 상태 묘사는 화자 자신이 그 현관을 열지 못 한다는 취지에서가 아니겠는가. 현관은 누가 열어주거나 현관이 스스로 열려야 한다. 게다가 고인 ‘찬바람’에 갇혀 운신이 어렵고 몸이 차가워져 이 상태마저 견디기 어렵다. 참고로 ‘한 발은 안에/한 발은 밖에’라는 화자의 탄식은 어디까지나 이 상황에 관련된다. 그 집 현관 밖에 한 발이 있고, 현관 안에 한 발이 들어서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저 이미 언급해온 대로 경계에 서 있다는 환유이다. 즉 대문 안팎이 경계 지역이며, 그 대문 안에는 들어섰으나 집 내부에 들어서지는 못한 상태를 강조하는 토로이다. 또 자신의 그 상태를, ‘발’뿐 아니라 마음에도 ‘물집이 잡’혀, ‘가물가물’, 즉 ‘작고 약한 불빛 따위가 사라질 듯 말 듯 자꾸 움직이는 모양’으로 형상화하는데, 고착에 관련하여 화자가 자각하는 자신의 깊고 아픈 심정을 우리도 잘 헤아릴 수 있다. 화자는 자신의 다음과 같은 판단에 봉착하고야만 것이기도 하다. 이도저도 아니다, 사력을 다해 여기에 이르렀으나 그간 노정은 결국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 그만도 못하지 않나... 이 허망한 탄식, 그러한 상황에 직면한 화자는 이 모든 장애를 통틀어, 마지막 잠 ‘오령(五齡)’에 든 ‘멧누에[산누에]’, 그것도 ‘고개 든 채 잠든 오령의 멧누에’에 자신을 은유하였다. 누에는 마지막 오령잠을 자고 나서,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며, 그리고 나방이 되어 깨어난다. 그래서 아직 성취의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화자는 ‘무릎 없이 변모를 기다리는/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라고 자신의 실정을 자각하고야 만다. 무릎이 없다면, 그렇다면 길 수도 없다. 혹 현관을 누가 열어주거나 혹 현관이 스스로 열릴지라도,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갈 수 없는 신세가 아닌가. ‘고개 든 채 잠’들어 있다는 건, 여전한 의지의 표상이라서 이 고백은 묵도(默禱) 이상으로 비창하다.
다시 말해, 이 시의 상황은 의지의 지속에 따라 성취의 희망이 있는 ‘승당미실(升堂未室)’[당에는 올랐고 방에는 아직 들어오지 못하다]’(『논어』 「선진(先進)」), 그 격려의 탄식과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는 수 없이 화자에게 바랄 수 있다. 화자가 꿈같은, 그 ‘멧누에’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것 같은 상태에서 깨어나기를. 나방이 되어 나는 꿈같은 것을 버려버리기를. 그리하여 재생된 무릎으로 떠나온 길을 작게나마 웃으면서 되돌아오기를. 그러면 어찌 좋지 않으랴. 미성의 청운 그 길과 그 길을 걷던 그때는 몰랐던 젊은 자신을 살피면서 또 후회의 탄식도 연발한다면 어찌 더 좋지 않으랴.
사족 : 독자 여러분, 생략과 함축이 뛰어난 이 시에서, 이미 했던 말 또 하지만, 이 시의 겸손하기도 한 화자를 이 시를 지은 시인으로 여겨서도 안 될 것입니다. 또 화자와 시인이 다른 인물이라고 해서 시인이 화자의 상황과 화자의 자의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이 시의 여운이 깊어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