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소금으로 간을 할 때마다
원시의 바다였던 히말라야 하늘빛과
아슬한 벼랑길 등짐으로 소금을 나르는
순례자 야크의 속눈썹을 생각한다
수심 깊은 대양의 사구에서 하늘 향해
밤마다 바다가 꾸었던 꿈들은
마침내 하늘 가까운 곳에서
분홍빛 사리(舍利)가 되었다
1억 년 시간이 만든 사리를 등에 지고
산맥의 험준한 바람길을 내딛는
야크의 속눈썹에 걸린 새벽달
1억 년 전 하늘빛과 1억 년 전 바다의 맛
히말라야 핑크 소금은
성스러운 경전의 행간 같은 신비함으로
싱겁지 않게, 짜지도 않게 살라고
그 맛을 조금씩 풀어준다
임애월 –히말라야 소금- 전문
살면서 과유불급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는 일은 참으로 많다. 그런데 이런저런 연유로 자주 듣게 되는 이 가르침을 제대로 삶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모르게 내 가슴 속에서 자란 못생긴 욕심 때문이다.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어느새 지나친 경우가 많다. 음식에 간을 맞추는 일도 이런 일의 범주에 속하지 싶다. 다소 싱거운 음식은 입맛에 안 맞더라도 그냥저냥 먹을 수 있지만 짠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 조금만 더 맛있게 하다가 빚어지는 안타까움이다.
시인은 한 가정의 주부이기도 하다. 히말라야의 소금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소금은 아니다. 우선 그 빛깔부터가 분홍빛으로, 우리가 흔히 보는 정제 소금의 하얀 색깔과는 전혀 다르다. 귀하다고 한다. 좋은 소금이라고 한다. 기왕이면 이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국과 반찬이 더 맛있으리라는 기대로 국과 반찬을 만들다가 시인이 지닌 사유의 촉수는 이 소금의 내력으로 뻗는다.
우리네가 사용하는 보통의 소금은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여 햇볕과 바람으로 수분은 날려 보내고 그 결정만을 얻은 것이다. 다시 말해 바다에서 얻은 것이다. 그런데 이 소금은 지구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에서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소금은 주로 파키스탄의 펀자브 지역에서 생산되는 돌소금이라고 한다.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던 까마득한 옛날에는 그 산맥이 바다였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지각 변동으로 바다가 거대한 산맥이 되었고 산맥에 배였던 바다의 수분이 빠지고 바다의 미네랄 성분이 소금으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의 감성은 그런 웅혼한 역동적 이미지보다 ‘히말라야 소금으로 간을 할 때마다/원시의 바다였던 히말라야 하늘빛과/아슬한 벼랑길 등짐으로 소금을 나르는/순례자 야크의 속눈썹을 생각한다’라며 험준한 히말라야산맥에서 등짐으로 소금을 날라야 하는 야크의 속눈썹으로 시선이 간다. 그리고 이어 ‘수심 깊은 대양의 사구에서 하늘 향해/밤마다 바다가 꾸었던 꿈들은/마침내 하늘 가까운 곳에서/분홍빛 사리(舍利)가 되었다’라며 바닷물의 염분이 어마어마한 지압의 결과로 소금이 되었다는 자연 과학적 사고가 아닌, 바다의 꿈이 마침내 사리가 되었다는 시적 사유에 이른다. 사리란 무엇인가. 석가모니의 열반이래, 수많은 수행자들의 참된 수행의 징표이며 믿음이다. 그 사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식탁에 있었던 것이다. ‘히말라야 핑크 소금은/성스러운 경전의 행간 같은 신비함으로/싱겁지 않게, 짜지도 않게 살라고/그 맛을 조금씩 풀어준다’라며 일상에 신앙과 같은 깨달음이 있음을 드러낸다.
임애월 시인은 제주도가 고향이다. 그 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제주도 바다의 달이 뜨는 언덕, 애월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데 어쩌다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할 일이 있으면 수원에서 살아온 나보다도 생선에 대해서 모르는 눈치이다. 시인은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수원에서 더 오래 살고 시를 써온 수원의 시인이다. 위의 시는 임애월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나비의 시간』에 실린 ‘히말라야 소금’의 전문이다. 시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 못지않게 뜨거운 시인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많은 직함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짧은 지면에 그 직함이나 시인이 받은 상을 열거하는 것보다 한 가지 일만으로도 임애월 시인이 수원 시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임애월 시인은 오랫동안 『한국시학』의 편집주간을 맡아왔다. 『한국시학』은 수원에서 나오는 유일한 전국 단위의 시전문 계간지이다. 이 원고를 쓰는 중에 임애월 시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일까지 꼭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부터 수원을 떠나 경상도 상주에서 감과 복숭아 재배를 하고 있으면서도 내게 게으름피지 말고 얼른 교정을 보라는 재촉이다.
그곳 상주의 감도 일품이지만 복숭아가 제대로이다. 시인의 손길로 자란 복숭아이기 때문일까. 아무튼, 이 원고 쓰고 교정도 내일까지는 볼 테니 올해도 그 크고 맛나는 복숭아 수원에서도 맛볼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