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0)] 홍문숙 '도라지꽃'

김준기 시인

 

집 뒤 산자락을 넘어가자

한달음에 마주친 도라지꽃들

때마침 내렸던 비 때문인가

보랏빛 흰빛만 남겨놓고서

제 안으로 숨어버린

내 오래전의 기억들

서로 다투어 이미 중년이 된 나를 향해

애틋한 고개를 들이민다

터뜨려줘.

내 유년의 도라지들이 낮잠에 든 나를 불러내어

하나하나 제 향기를 열던 그때의 그 모습이다

서로 가슴을 숨기다가 수줍음 깊이 볼우물만 그리던

어느 소년의 비온 뒤 오후같은, 그런 도라지꽃을

나는 망두산 너머에 풀어놓고 있다.

                           홍문숙 –도라지꽃- 전문

 

망두산이 어디였던가. 나무 한 그루가 없었던 산이 있었다. 그저 밋밋한 황토산이었다. 수원 토박이라 하더라도 망두산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흔히 팽나무 고개라고 부르는 언덕에서 지금 인계초등학교 쪽으로 넘어가는 길, 파밀리에 아파트가 자리 잡은 곳이 망두산이었다. 이전에는 그곳에 향원 아파트가 있었다. 까까머리 민둥산에 지은 아파트였다. 본래는 청송 심씨 묘역이 있던 자리였는데 산을 깎아 편평하게 다져서 부지를 조성하더니 아파트를 짓기 전까지는 꽤나 오랜 세월동안 풀 한 포기 없는 황토 언덕인 채로 있었다.

위의 시는 홍문숙 시인의 시집 『귀향, 직립의 휴식』에 실린 시 ‘도라지 꽃’의 전문이다. 시인은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 어릴 적에 살던 망두산께를 회상한다. 시인이 어릴 적 살던 집은 망두산 아래 고샅길 파란 나무 대문이 있던 집이었다. 그 집 근처 어딘가 한 귀퉁이에 도라지밭이 있었나 보다. ‘집 뒤 산자락을 넘어가자/한달음에 마주친 도라지꽃들/때마침 내렸던 비 때문인가/보랏빛 흰빛만 남겨놓고서/제 안으로 숨어버린/내 오래전의 기억들’이라고 한다.

도라지 꽃이 피었다면 7월에서 8월 사이이다. 장마는 지났지만 언제 한여름 대낮의 소나기가 내릴지 모르는 계절이다. 비가 한차례 지나간 후, 보랏빛 흰빛의 도라지꽃은 그 빛깔이 더욱 뚜렷하다. 세월이 지났어도 그 빛깔의 기억은 선연하다. ‘이미 중년이 된 나를 향해/애틋한 고개를 들이민다’, ‘내 유년의 도라지들이 낮잠에 든 나를 불러내어/하나하나 제 향기를 열던 그때의 그 모습이다’라고 시인은 회상한다. 

살면서 누군가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추억 한두 가지는 누구에게나 있다. 어쩌면 그 추억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시인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나 보다. ‘서로 가슴을 숨기다가 수줍음 깊이 볼우물만 그리던/어느 소년의 비온 뒤 오후같은, 그런 도라지꽃을/나는 망두산 너머에 풀어놓고 있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미 물리적으로는 사라지고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추억의 공간인 망두산에 그 추억을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홍문숙 시인은 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파밭’이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다.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긴 늦깎이 등단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누구보다도 시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는 것은 필자가 잘 안다. 사실은 홍문숙 시인은 필자와 초등학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5학년 때는 짝꿍이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는 느낌이 있지만,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 둘 다 시인인 된 경우가 얼마나 될까. 아마 유일하지 싶다.

‘서로 가슴을 숨기다가 수줍음 깊이 볼우물만 그리던/어느 소년의 비온 뒤 오후같은, 그런 도라지꽃’이라고 했다. 독자들이시여. 부디 오해 없으시기를 빕니다. 초등학교 짝궁은 맞지만, 그 소년이 필자는 아닙니다.

이 시를 통해 지금은 그저 희미한 그림자만 남았어도 시인의 도라지꽃 빛깔처럼 때로는 선연한 추억들을 다시 피워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벌써 날씨는 한여름으로 접어드는 듯하다. 곧 마파람에 실린 비가 내릴 것이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피는 도라지꽃. 굳이 도라지밭이 아니어도 우리네 살림터를 가리는 흙담 아래 한두 송이는 피던 꽃이었다. 그런 꽃을 인제는 보기가 쉽지 않다. 대청마루에 앉아 우두커니 도라지꽃을 바라보며 듣던 한여름 쓰르라미 소리가 그리워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