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77)]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언어는 어떻게로 구현된 메시지가 본질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왜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왜가 더 중시되기도 한다. 우리의 인식을 제대로 조성하거나 관련 문제까지  판단하기 위해 그 참조가 불가피하다며. 시 또한 그러하다. 시 그 자체가 전부일 수 있겠지만, 어떤 시공과 무관하게 생성되지 않기에, 즉 역사와 현실이 접맥되지 않은 진공(眞空)의 상태에서 유래하지 않기에, 우리는 시를 이해하기 위해 그 외부 상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시로 돌아온다면 좋겠는데 돌아오지 않거나 어느덧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시를 평가하여 문제가 야기되었고, 야기될 수 있다. 시와 외부 상황에 균형을 잡아 고려하고, 고려한 후에는 시로 돌아와 시 자체의 우수한 매력을 우선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가 큰 진정(眞情)의 개연성에 따라 용인하고 감상해야 하는 허구인줄 알면서도 나아가 사실이기를 바란다. 즉 시의 화자가 시인이며, 시의 메시지가 시인의 지향이자 실천이었거나 실천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다시 말해 시는 시인의 사실 기록이 아니라 좁은 의미의 사실을 넘어서는 심미 차원의 언어예술이며 우리는 시의 메시지와 심미성을 감상하여야 한다.  

 하지만 시와 시인이 일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고, 더욱 감동해마지 않는다. 「님의 침묵」(1925)과 만해 한용운(1879-1944)은 그 표본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님의 침묵」/한용운

 

 1925년 46세 만해는 이 시를 쓰기 이전에, 「조선불교유신론」(1910)을 작성하였고, 고려 팔만대장경에서 발췌한 교리서 『불교대전』(1914)을 편저하였다. 1919년에는 최남선이 쓴 「3‧1독립선언서」를 검토하고 공약 3장[1장 : 오늘 우리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을 추가하면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옥중에서는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자유는 만유의 생명]를 썼으며, 3년 복역한 이후, 설악산에서 참선하다가 「십현담주해」(1925)를 작성하였다. 이 여정에서 표출된 「님의 침묵」, 한 번뜩이는 시재(詩才)가 다듬은 노래가 아니라, 일제 식민 치하의 한 위대한 인격이 길고 긴 고뇌로 연마한 견식이 토로된 그 간절한 발원(發願)이다. 

 지난 6월 13일 오후와 저녁이 교차하는 무렵, 남한산성 만해기념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스토리가 있는 만해기념관』(전보삼 지음) 출간기념식에서 만해를 기리는 식순의 하나로 홍성례 시인이 이 시를 낭독하자, 이전 읽을 때와 달리 깊고 크게 간절하며 비통한 만해와 당대의 희망을 절감하며 설핏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감개의 여운을 이어 이 시 10행을 읽다가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까 하여 다섯 단위로 나누었다. 1-4행(님과의 지난 이별 상황), 5행(이별 이후 심화 지속되는 님에의 사랑), 6행(더욱 주체할 수 없는 현재의 통한), 7-8행(슬픔의 힘을 희망의 동기로 반전하고 재회 기약), 9-10행(님의 침묵에 더욱 넘치는 나의 사랑 노래). 

 1행의 두 문장에서부터 우리는 대번에 걸출한 시가 시작된다고 느낀다. 화자는 님과의 이별 상황을 반복 제시하는데, 둘째 문장은 ‘아아’와 ‘나의’를 적절하게 추가, 이별이 강조되면서 리듬이 고조된다. 2행의 ’푸른 산빛’과 ‘단풍나무 숲’은 대조되는 이별 이전과 이후 상황의 환유이다. 3행에서,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황금의 꽃같’았으나, ‘한숨의 미풍에 날아’간 ‘차디찬 티끌’, 이별의 상처가 가없이 고양된다. 4행의 ‘뒷걸음쳐서 사라’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화자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烙印)이며 망각하려 해도 망각할 수 없는 사랑을 암시한다. 

 5행은 이 시의 전개에서 중요한 계기.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이는 나의 님 사랑은 현재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도취와 마비 상태라는 고백이다. 이제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관련하여 자신에게 충만한 것은 오직 님의 말과 얼굴이라는 강조이다. 귀머거리가 귀가 멀기 직전에 들은 님의 향기로운 말을 여전히 잘 듣고 있는 것처럼 자신도 그럴 뿐이며, 장님이 눈이 멀기 전에 본 님의 꽃다운 얼굴을 여전히 잘 보고 있는 것처럼 자신도 그럴 뿐이라는, 자신에게도 거듭하는 맹서이기도 하다.  

 6행에서 화자는 거자필반(去者必返)을 희미하게 의식하고 현재의 이별 상태를 회자정리(會者定離)로 위로하면서도 다시 이별의 상태를 격심한 비애로 통렬하게 자각한다. 

 7행,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에서는 잠시 휴지하며 이 문장을 조정하면 좋겠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과,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는 주술관계인데, 의미호응이 어색하다. 그래서 그 사이에 ‘어리석고’가 생략되어 있다고 하겠다.[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어리석고’,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화자는 이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진작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겠으며, 그리하여 ‘슬픔의 힘’을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부활의 물로 부어 ‘새 희망’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여 마침내 꽃을 피우고야말겠다고, 드디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야 만다. 이 역설은 이 시의 정점이자 주제이다. 8행은 거자필반(去者必返)을 확실하게 부각한 그 부연. 

 그리고 9행과 10행은 없었다면 너무 아쉬웠을 마무리, 현재의 의지를 유종의 미로 정리 정돈하는 적의(適宜)하고 적실(適實)한 결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 이 도저한, 불퇴전 불굴, 불패의 간절한 기운이 넘치는 이 노래는, 화자 ‘나’의 노래만이 아니라, 어느덧 당대 모두의 노래가 되었고, 결국 ‘님의 침묵’을 해제하였다.    

 사족 : 님은 누구인가? 만해는 시집 『님의 침묵』(1926)의 서문 〈군말〉에서 이미 해명하였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따라서 ‘님’은 님이면서도 강력한 상징이다.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을 포함하여 독자가 그리워하고 기리는 모든 대상을 포괄한다. 만해는 이어서 언급하였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