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1)] 이광호 시인 '녹이 슬어'
단단한 쇳덩이가 녹이 슬어
들어 올릴 때마다
제 몸을 던다.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부푼 적이 있다.
한 꺼풀씩 벗겨지며 얇아지는
그리고 사라지는
소멸의 공식
어머니는 부푼 적이 있었는가,
작은 몸을 둥글게 말아
바퀴처럼 구르는……
아! 어머니는
가슴 부풀고
배가 부푼 적이 있다.
나 때문에
그리고 평생을
빨간 녹을 흘리며 저렇게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산이 부풀면 꽃이 피고
새가 운다.
새도 모르는 나만의 울음
해가 빨갛게 풀리며
강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광호 –녹이 슬어- 전문
그런 시들이 있다. 읽을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광호 시인의 시 ‘녹이 슬어’가 바로 그런 시이다. 이 시는 시인의 시집 『비 오는 날의 채점』에 실려 있다. 이 시집은 결코,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없는 묵직한 사유들로 그리고 때로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의문을 던지는 시들로 한편 한편이 시인의 평소의 시적 탐색을 가늠케 해준다.
‘단단한 쇳덩이가 녹이 슬어/들어 올릴 때마다/제 몸을 던다.//사라지는 것들은 모두/부푼 적이 있다.//한 꺼풀씩 벗겨지며 얇아지는/그리고 사라지는/소멸의 공식’
지금이야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예전에는 마루 밑창에는 여지없이 어디선가 빼어 둔 못이 몇 개씩은 있었다. 구부러진 것을 몇 번 망치로 두드리면 그런대로 요긴하게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녹이 슨 못은 새 못보다 오히려 굵다. 그러나 그 녹을 벗겨내면 훨씬 가늘어진다. 개중에는 아예 삭아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소멸하기 이전에는 오히려 부풀고 그 부푼 것이 녹이라는 깨달음을 이 시를 통해 얻었다.
시인은 우리네 삶도 다르지 않음을 묻고 답한다. ‘어머니는 부푼 적이 있었는가,/작은 몸을 둥글게 말아/바퀴처럼 구르는……//아! 어머니는/가슴 부풀고/배가 부푼 적이 있다./나 때문에//그리고 평생을/빨간 녹을 흘리며 저렇게/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없이 왜소해진 어머니의 몸집이 우리를 먹먹하게 할 때가 있다. 그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몸을 부풀리신 적이 있었다. 꿈을 품은 가슴도 부풀리셨다. 그러나 그것은 빨간 녹을 흘리며 당신을 깎아나가신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왜소해지신 것이다.
그리고 이어 ‘산이 부풀면 꽃이 피고/새가 운다.//새도 모르는 나만의 울음//해가 빨갛게 풀리며/강 속으로 가라앉는다.’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네 삶에도 꽃이 피고 새가 넉넉히 울도록 부푼 산과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꽃과 새들은 나만의 울음을 모른다. 나 또한 그 무상의 섭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 속으로 가라앉는 노을이 일깨워준다.
이광호 시인은 수원 토박이이다. 그런데 수원에 사는 시인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어느 문학 단체에도 소속된 적이 없기 때문일까.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시인의 만만치 않은 시적 역량을 다 안다. 시집 『비 오는 날의 채점』 말고도 시집 『자전거를 타다』를 상재하였다. 이광호 시인에게는 다소 엉뚱한 면이 있다. 본래는 대학에서는 건축학을 전공한 공학도인데 대학원에서는 경영학과 사회복지학으로 각각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사)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의 본부이사이기도 하고 ‘(사)종묘제례보존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이력을 통해 그가 바라보는 세계의 한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공저로 『유교 인문학 강좌』를 펴낸 것도 평소 시인이 지향하는 세계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이상하게 사계절 중에서 여름의 저녁노을이 제일 장엄하게 느껴진다. 이광호 시인은 필자의 고등학교 선배이다. 후배가 선배를 불러낸다는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웬만해서는 시내에 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선배를 꼬여내어 방화수류정에라도 올라야겠다. 강은 아니더라도 팔달산에 지는 저녁노을이라도 함께 바라볼 생각이다. 내 몸의 녹이 여름날 저녁노을처럼 장엄한 것은 못되더라도. 해가 지면 선배한테 근처 막걸리 집에서 파전에 탁배기 한 잔 사달라고 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