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3)] 전영구 '관대한 사랑, 자운영'

김준기 시인

 

흐트러지게 날리던 미소

잠시 접은

자운영

 

볕 아래

풋거름처럼 늘어져도

그 자리를 비워둔다는

약조가 미더워

보풀어 오른 주둥이 삐쭉거리다

자줏빛 머릿결 풀어헤치며

가는 허리

다시 접은

자운영

                                          전영구 – 관대한 사랑, 자운영- 전문

 

예년에는 없었던 장마라고 한다. 세상의 인심이 하 수상해지니 천기마저도 도통 종잡을 수가 없어, 마른장마인가 싶다가 어이없이 태풍에 버금가는 비바람을 예고하기도 한다. 다 자란 모[苗]들도 쓰러지는데 아직 어린 것들이 또 어떻게 견딜까 걱정이다. 

가을 햇살에 일렁이는 물결을 황운이라고도 일컫는다. 마치 황금빛 구름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일 게다. 그런데 예전에는 봄에도 우리네 논에 자주빛 구름처럼 일렁이는 물결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붉은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꽃들의 일렁임이었다. 그래서 꽃 이름이 자운영(紫雲英), 자주빛 구름과 같은 꽃부리였을까.

위의 시는 전영구 시인이 2016년에 펴낸 시집 『뉘요』에서 발췌한 ‘관대한 사랑-자운영’의 전문이다. 관대한 사랑은 자운영의 꽃말이다. 왜 이 꽃의 꽃말이 하필이면 ‘관대한 사랑’일까. 자운영의 생태를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예전에는 이른 봄 논에 일부러 자운영 씨를 뿌리기도 했다. 그러면 곧 논이 온통 새파란 싹으로 덮인다. 새순이 부드러울 때 뜯어 살짝 데쳐서 나물로 밥상에 올리면 그야말로 별미이다. 보통은 4월에서 5월 사이 꽃이 핀다. ‘흐트러지게 날리던 미소/잠시 접은/자운영’ 큰 소리로 웃으며 나를 보라 외치지 않아도 작은 꽃들이 흩날려 주는 조용한 웃음에 더 눈길이 간다. 그런데 그 꽃이 지기도 전에 농부는 논바닥에 쟁기의 보습을 댄다. 그냥 갈아엎는 것이다. 그러면 그 풀들은 그대로 논바닥 깊은 곳에서 거름이 된다. 사실 자운영은 대표적인 녹비 작물이다.

시인은 ‘볕 아래/풋거름처럼 늘어져도/그 자리를 비워둔다는/약조가 미더워’라고 했다. 짧은 글에서 자운영에 얽힌 전설까지 다 쓸 수는 없다. 청혼을 하러 오겠다는 왕자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를 기다리다가 죽은 넋이 꽃으로 피어났고 그 처녀의 이름이 자운영이었대나. 아무튼, 자운영은 아직 꽃이 지지도 않았는데 갈아엎어져도 오히려 그 땅의 거름이 되는 관대한 사랑의 꽃이다. 시인은 ‘약조가 미더워’도 그 작은 풀꽃들이 안쓰럽다. ‘보풀어 오른 주둥이 삐쭉거리다/자줏빛 머릿결 풀어헤치며/가는 허리/다시 접은/자운영’이라고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전영구 시인은 그런 시인이다. 커다란 체구에 비해 여린 마음씨에 다정다감한 심성을 지녔음을 나는 안다. 시인은 항상 장발이다. 그런데 그냥 기르는 게 아니라 항상 단정히 빗어 뒤로 묶은 꽁지 머리이다. 시인이 머리카락을 기르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냥 멋이나 취향이 아니라 그렇게 기른 머리카락을 다른 곳에 쓰기 위함이다. 소아암 환자들의 가발을 만드는 데 쓰라고 애써 기른 머리카락을 주기적으로 잘라 기부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퍼머는 물론 염색을 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전영구 시인의 몇 권의 시집 속에서 유독 이 시에 마음이 간 까닭은 자운영의 관대한 사랑과 시인의 평소의 삶이 왠지 닮은꼴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학비료의 발달로 자운영 꽃을 보기가 점점 어렵다. 하긴 인젠 수원에서는 모내기를 한 논조차 보기가 어렵다. 그래도 서수원 일대에는 아직도 제법 넓은 무논이 있다. 지난봄 그곳을 지나다 누가 씨를 뿌렸는지 작지만, 자운영 꽃이 가득한 논을 보았다. 왠지 칠보산 산자락에서 뻐꾸기가 우는 것 같았다. 물론 착각이었다. 뻐꾸기가 울기에는 이른 계절이었다. 논 위로 펼쳐진 작은 꽃밭이 그런 행복한 착각을 주었던 것이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그 논에서도 땅속으로 들어가 거름이 되었을 자운영을 생각한다. 그 관대한 사랑이 베푼 지력으로 이 장맛비 정도는 넉넉히 이겨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