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봉녕사에 능소화 활짝 피었네

김우영 논설실장 / 시인
봉녕사 향하전 옆에 핀 능소화. (사진=김우영)
봉녕사 향하전 옆에 핀 능소화. (사진=김우영)

“뭐해? 얼릉 나와.”

다짜고짜 빨리 나오란다. 같은 단체에서 오랫동안 함께 활동하는 회원이면서 가장 가까운 술벗이다.

어디냐니까 봉녕사에 있다고 한다. 대적광전 옆과 향하당 옆에 능소화가 아주 예쁘게 피었으니 카메라 들고 오라는 거다.

바깥 온도를 보니 영상 30도가 넘는다.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팔달구 우만동 248 봉녕사에 도착했다.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하려고 매점을 찾아보니 오늘은 쉬는 날이란다.

그래도 약사전 앞에 마실 수 있는 물이 있어 갈증을 풀었다.

능소화 사진을 찍기 전 약사전에 들어갔다. 평소엔 대웅전 격인 대적광전에 들어가 삼배를 하고 잠시 명상에 들곤 했지만 이번엔 마음이 내 발길을 약사전으로 이끌었다.

먼저 약사전에 들은 이유가 있다. 창졸간에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지난 6월 24일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23명이 숨지고 8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총 31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사였다. 사망자들 가운데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다. 가족들과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코리안드림을 꾸며 이국땅에서 고된 노동을 견디던 그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 어이없는 죽음에 세상이 경악했지만 아직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2일 화성시청 분향소에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화재 참사에 대한 사과·보상, 부상자에 대한 지원과 생존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렇게 호소했다. “이주노동자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고.

봉녕사 전경. (사진=김우영)
봉녕사 전경. (사진=김우영)

3배를 했다.

첫 번째는 아리셀 화재 참사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해, 두 번째는 세상에 온 내 외손자를 위해, 세 번째는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그리고 경내를 걸으며 촬영을 시작했다. 지척에 있음에도 봉녕사엔 참 오랜만에 온다. 매년 사찰음식축제와 부처님 오신 날엔 꼭 왔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이번에 처음이다.

봉녕사에 올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래서 꼭 법당에 들러 잠시 앉아 명상 흉내를 내다 가곤 한다. 마음 내키면 3배를 하고 불전함에 약간의 보시도 한다.

특히 봉녕사의 중심전각인 대적광전 앞 향나무는 반드시 ‘뵙고’ 간다. 수령 800년이 지난 이 향나무는 2007년 5월 22일 수원시 보호수로 지정 됐다. 향나무의 높이는 9.4m이며, 둘레는 2.8m이다. 나는 이렇게 큰 향나무를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봉녕사 800년 된 향나무. (사진=김우영)
봉녕사 800년 된 향나무. (사진=김우영)

향나무어르신에 존경을 표하고 봉녕사 능소화 구경을 시작했다. 이곳 능소화가 잘 알려지긴 했나보다. 이른 바 ‘대포카메라’라고 불리는 커다란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띈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사진들이 참 생생하게 살아 있다. 다들 잘 찍었다.

내 사진 실력과 ‘똑딱이카메라’로는 그런 사진 못 만든다.

그러면 어떤가, 사진작가도 아닌데. 이 정도면 됐다. 내 의도대로 잘 찍했다. 능소화 꽃 색깔도 참 예쁘다.

다른 이름도 있다.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한다. ‘소화’ 궁녀가 찾아오지 않는 임금을 기다리다 죽고 만다. 유언에 따라 담장 가에 묻었는데, 그 자리에서 핀 꽃이란 전설도 있다. 임금이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하사했다고 해서 어사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고 해서 양반꽃이라고도 불린다. 중부 지방 이남의 절에서도 심었단다.

그런데 기생꽃이라는 이름도 있다.

절집 마당에 핀 꽃치고는 참으로 많은 이름을 가졌다. 꽃말은 ‘그리움’, ‘명예’, ‘이름을 날림’이다. 공부하는 스님들의 화두·공안인 ‘무(無)’ ‘공(空)’은 거리가 있다. 그런데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어사화면 어떻고 기생꽃이면 뭐가 다르랴. 분별심 없애려 수행하는 이들 눈에는 ‘그리움’이고 ‘명예’고 ‘기생꽃’이고 ‘어사화’고 그냥 절집에 핀 예쁜 꽃일 뿐이다. 아니다. ‘예쁘고’ ‘못났고’ 이런 분별조차 없을 지도 모른다.

봉녕사 대적광전 앞에 핀 능소화. (사진=김우영)
봉녕사 대적광전 앞에 핀 능소화. (사진=김우영)

‘흐드러진 능소화가 무수한 분홍빛 혀가 되어 그의 몸 도처에 사정없이 끈끈한 도장을 찍으면 그는 그만 전신이 뿌리째 흔들리는 야릇한 쾌감으로 줄기를 놓치고 밑으로 추락하면서 깨어났다.’

박완서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가운데 영빈의 꿈에 대한 묘사에서 능소화가 나온다.

우리 문학 속에 담긴 아름다운 꽃 이야기를 담은 책 ‘문학 속에 핀 꽃들’(2013년, 샘터사)에서 저자 김민철은 이 소설을 설명하면서 능소화를 ‘화려한 팜므파탈의 꽃’라고 했다.

‘능소화가 기생꽃이라는 별칭도 가진 것을 보면 사람들이 보는 느낌은 비슷한 모양이다. 기생꽃이라는 이름은 능소화가 늘 화려한 자태로 요염함을 자랑하며 마지막까지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일 것이다. 능소화는 꽃이 질 때 시들지 않고 싱싱한 상태에서 송이 째 뚝뚝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물론 능소화가 저녁노을 같은 파스텔톤 연한 주황색을 가진 데 주목해 요염함보다는 차분한 느낌을 준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더위와 장마가 기승을 부린다. 장마 그치고 폭염의 기세가 수그러질 때면 능소화 꽃송이들도 모두 떨어질 터이다.

그 전에 한 번 더 와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