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4)] 윤주은 '뽕뽕다리'

김준기 시인

 

때로는 개들도 꼬리 흔들며 건너갔지

신기루 같은 매교시장 뽕뽕다리

 

세상 위의 굳건했던 발도 다리 위에선

제 몸 같던 개들을 떨어뜨리곤 했지

복날의 다리 밑 설설 끓는 가마솥 위로

대롱대롱 매달린 가족의 젖은 눈빛이

마른 건빵처럼 부서지던 뽕뽕다리

 

다리 위에서 안부를 묻는 것은 금기였으므로

우리는 서로 모른 체하였다

 

풀 먹인 모시적삼을 입고 할머니 건너가네

짐자전거를 끌고 아버지 건너가네

보따리를 이고 어머니 건너가네

 

휙, 구멍마다 발목을 잡아끄는 차가운 손들이

제 발로 떨어뜨린 따스했던 가족의

낯익은 손일 리 없다고 출렁이는 다리 위

 

행진곡을 부르는 언니가 건너가네 

샬랄라 치마를 나풀거리며

입술을 깨문 채 동생이 건너가네

흔들흔들 뽕뽕다리

 

멀고도 두려운 저마다의 뽕뽕다리

아직도 건너고 있는지

터벅터벅 뽕뽕다리

끝나지 않은 뽕뽕다리

                 윤주은 ‘뽕뽕다리3 –복날’ 전문

 

우리네 옛길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 산을 만나면 돌아갔고 강이 막으면 얕은 물살을 찾아 다리를 놓았다. 그러나 보니 강은 물론 야트막한 개울이 마을과 마을 사이의 경계가 되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놓고 건너면 충청도이고 이쪽은 경기도인 것처럼 행정구역을 가르는 경우가 꽤 있다. 그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때로는 떠남과 돌아옴이기도 하고 혹은 시인이 바라본 것처럼 ‘풀 먹인 모시적삼을 입고 할머니 건너가네/짐자전거를 끌고 아버지 건너가네/보따리를 이고 어머니 건너가’는 힘겨운 일상이기도 했다. 

지금의 수원은 수원화성이 축성되면서 이루어진 도시이다. 광교산에서 흘러내린 수원천은 화홍문의 일곱 홍예를 무지개로 적셔놓고 유천의 양 허리를 지탱하는 버드나무의 뿌리를 적시고 남수문을 지나 버드내를 들렀다가 흘러간다. 당연히 수원천에는 다리가 많았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된 견고한 다리는 몇 개 없었고 나머지는 징검다리이거나 고작해야 뽕뽕다리였다. 위의 시는 윤주은 시인이 2013년에 펴낸 시집 『입안의 칼』에 수록된 ‘뽕뽕다리3 –복날’ 전문이다. 용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린 시절 수원으로 와서 매교동에서 자랐기에 볼 수 있었던 풍경에 대한 추억이 이 시의 중심 줄기를 만든다. 

뽕뽕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다리의 상판을 구멍이 뽕뽕 뚫린 강판을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본래는 세계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임시 활주로를 만들기 위해 생산한 철판이었다고 한다. 태평양에 있는 섬들이 대부분 폭우가 쏟아지는 지역이어서 활주로의 빗물이 그 구멍 사이로 쉽게 빠지도록 고안한 것이었다. 6.25 직후 우리는 이 중고 철판을 미국으로부터 들여와 그야말로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이 철판으로 담을 만들기도 했고 다리의 상판 재료로 사용했다. 그 다리를 건널라치면 구멍이 뽕뽕 뚫려있어 그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높이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행진곡을 부르는 언니가 건너가네/샬랄라 치마를 나풀거리며/입술을 깨문 채 동생이 건너가네/흔들흔들 뽕뽕다리’ 언니에게는 그 다리를 건너는 일이 놀이의 하나였지만 어린 동생은 흔들리는 다리를 입술을 깨문 채 무서움을 참아야만 건널 수 있는 다리였다. 

그 다리께에서 요즘은 볼래야 볼 수 없는 일들이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거의 매일 일어났다. 복달임을 위해 개를 도살하는 일이었다. 요즘 관점으로 보면 정말이지 그로테스크한 광경이기도 했다. ‘때로는 개들도 꼬리 흔들며 건너갔지/신기루 같은 매교시장 뽕뽕다리// 세상 위의 굳건했던 발도 다리 위에선/제 몸 같던 개들을 떨어뜨리곤 했지/복날의 다리 밑 설설 끓는 가마솥 위로/대롱대롱 매달린 가족의 젖은 눈빛이/마른 건빵처럼 부서지던 뽕뽕다리//다리 위에서 안부를 묻는 것은 금기였으므로/우리는 서로 모른 체하였다’

집에서 가족 구성원의 일원으로 기르던 개였다. 개는 주인이 끌고 나가니 영문도 모르고 나갔을 것이다. 어쩌면 주인보다 앞서서 꼬리를 흔들며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인이 개의 목줄을 다리 한쪽에 묶고 개를 다리 아래로 밀어버린 것이었다. 목이 매달린 개를 바라보는 가족의 눈길은 ‘마른 건빵처럼 부서지던’ ‘대롱대롱 매달린 가족의 젖은 눈빛’이었다. 복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가난했던 시절, 그래서 염치가 염치가 아니었던 시절의 모습이다. 그렇게 추억은 그리운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픔이기도 하다.

우리는 길을 통해 다리를 만난다. 그 다리는 물리적 기능만 지닌 공간이 아니다. 그 다리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윤주은 시인이 건너왔고 또 건너려 하는 다리. ‘멀고도 두려운 저마다의 뽕뽕다리/아직도 건너고 있는지/터벅터벅 뽕뽕다리/끝나지 않은 뽕뽕다리’ 

윤주은 시인이 KOIKA 사업의 일환으로 방글라데시에 다녀온 지가 몇 달 안 되는 것 같은데 또 동티모르로 떠난다고 한다. 시인이 건너려는 뽕뽕다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인가. 건강하게 다리를 건너갔다가 다시 건너오리라 믿는다. 윤 시인. 빈말이 아니고 가기 전에 저녁 한 번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