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81)] ‘물속에 숨어있던 수천의 새떼들’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시림(詩林)》 옛 한 동인을 그것도 그 본산인 수원의 역사(驛舍)에서 만날 수 있었다니. 입대 이전에 동인지 지면으로 사귀고 헤어졌고, 1989년에 대면해 동인지 『그대 걸어갈 광야는 멀다』를 낸 이후 상면하지 못 했는데도 젊은 시절 그 얼굴로 알아볼 수 있었다. 세월이 수유 같다더니 중얼거렸는데, 수원천변 주점에서 옛 이야기 끝에 그가 내민 올 3월 발간 『이정환시조전집 서서 천년을 흐를지라도』를 받아들자, 긴 세월이 엄연히 그 속에 그대로 차곡차곡 서려있었고 그 무게를 돌이킬 수 없는 하중으로 실감하였다. 축하를 연발하며 예의로 책을 펴 첫 편에 시선을 주었다.

 

길모퉁이를 돌아오던 나의 소녀들이

쟁반과 꽃병과 물주전자와 함께 돌아선다

 

환각의 아지랑이만

떠다니던 그 봄날

                             - 「소묘」 

 

 읽자말자 지난 시절 한 순간을 언뜻 회고하는 화자의 선명하고 몽롱한 심정이 필자의 그것으로 이관되었다. 그런데도 알 수 없을 관련 사연에 집중하는 자신을, 소녀들이 돌아서는 작중 바로 그 시공에서 언뜻 거슬러 바라보는 것 같았다. 고개 들었는지 아니었는지 시인에게, 좋다고 하였고, 시인은 젊은 시절 전근 간 학교에서 겪었던 장면을 운운하였는데, 마침 술과 안주가 와서 그 술회가 그만 끊겼다. 같이 모였던 동인들(김우영 문창갑 김미구)과 1박 2일 오디세이를 거치고 집에 돌아와 한 잠 자고 이 시조를 다시 읽었다. 

 왜 소녀들은 돌아섰나. 못 다했지만 시인의 언급으로 추정한다면 아마 여학생들이 부임한 선생님을 맞아 같이 마실 물과 교탁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대신할 꽃병을 마련해 교실로 오다가 선생님을 만나자 부끄러워 돌아서는 모양인 듯. 발단이자 결말인 이 간결한 진술에서, 소녀들의 자신을 기리는 무구한 심성뿐만 아니라 미묘하고 순진한 애정의 기미도 감지한 당시의 자신을 그 장면과 아울러 반추하는 현재 화자의 탄식과 같은 심정이 부각된다.      

 그런데 우리 중 일부는 필자처럼 작중 소녀들이 돌아선 이유를 다르게 추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중 공간이 규율의 학교가 아니라도 상관없는 가운데, ‘쟁반과 꽃병과 물주전자와 함께’ 다가오다가 그만 ‘돌아’선 ‘나의 소녀들’, 이 장면을, 1행과 2행의 사이에 생략으로 개재된 듯한 그녀들의 어떤 오해나 오인, 화자의 미진한 성의나 불찰로 하여, 그만 멀어져간 거리까지 포함해 짐짓 노래한 유감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그리하여 ‘돌아선’ ‘나의 소녀들’의 뒷모습과 그 여운에 관련하여, 그 배경으로 ‘환각의 아지랑이만/떠다니던 그 봄날’이라 제시하였는데, 이 부연은 이러한 접근에 좀 더 어울린다고 하겠다. 

 참고로, 어느 쪽으로 접근하든 여기서 ‘환각’은 오인이나 도취가 아닐 것이다. 위 장면이 너무 선명하고 강렬하여 못내 그 기억이 오히려 몽롱하기도 하다는 반어성 강조의 취지일 것이다. 요컨대 이 작품은 기미(機微)의 시조로 우리를 작중으로 흡입하여 1, 2행과 유사한 추억이나 대체할 수 있는 추억을 환기시켜줄 것 같다. 다음 시조에서도 우리는 그 내부에서 발원한 기미를 입문으로 삼아 독자를 초대하는 시풍을 느낄 수 있다.     

 

강물 위로 새 한 마리 유유히 떠오르자

 

그 아래쪽 허공이 돌연히 팽팽해져서

 

물결이 참지 못하고 일제히 퍼덕거린다

 

물속에 숨어있던 수천의 새떼들이 

 

젖은 날갯죽지 툭툭 털며 솟구쳐서

 

한순간 허공을 찢는다. 오오 저 파열음!

                      - 「새와 수면」 

 

 일상과 비 일상, 자연과 초자연의 경계에서 설정된 작중 세계라서 우선 낯설기도 하지만 시행들의 힘차고 거침없는 전개에 끌려 우리는 곧 어느 강가에 서게 되고, 굉장한 장관을 참관하는 귀중한 기회를 가진다. 묵묵히 그저 흘러 흘러가던 ‘물결’은 그 공중에 ‘새’가 어디에선지는 모르지만[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일 물속일 수도] ‘유유히’, 그렇다 ‘유유히 떠오르자’ 드디어 때맞춰 ‘참지 못’한다. ‘새’가 인력을 발생하고 ‘물결’도 인력을 발동하여 그 사이에 강인한 자력(磁力)이 형성되어 ‘새’와 ‘물결’은 조응하는데, 그러자 ‘물속에 숨어있던 수천의 새떼들’이 수면 아래에서 일제히 수면 위로 부상하며 ‘한순간’에 ‘허공을 찢는다.’ 이 기이하고 활연(豁然)한 광경에 놀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매력도 느낀 우리는 차츰 이 상황을 점차 무엇인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짧은 그러나 규모가 크고 장쾌한 이미지를 일거에 활달하게 형상화한 이 시조는 그 자체로 완결되지만 독자에게 언외의 메시지 남기며 그 이해와 점묘(點描)를 촉진하기도 한다.      

 먼저 사실 화자가 본 것은 ‘강물 위로 새 한 마리 유유히 떠오’른 장면뿐이며, 그 이하는 화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어린 상상이라고 우리는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하를 비유로 읽어야 하고, 아니 1행 ‘강물 위로’부터 그렇게 다시 읽어야 하며, 무엇을 연상하면서 읽을지는 그간 해온 대로 역시 자신의 입지와 상상에 따를 수밖에 없다. 돈오돈수(頓悟頓修) ‘대오각성(大悟覺醒)’의 계기, 상황에 주저 없이 대응하는 이해초월 ‘대인호변(大人虎變)’, 또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어떤 혁명의 봉기 등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묘사에 집중하던 우리 옆의 화자가 말미에서 ‘오오 저 파열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소리는 귀를 찢는 굉음이 아니라 묵음, 그러니까 아련한 정적의 소리로 들린다. 어째서 왜 그런지 잘 알 수 없다. 허공을 찢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사족 : 만해축전과 만해대상을 제정하고 한국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 시대의 대덕이자 『아득한 성자』(2007)의 시선일여(詩禪一如) 시인, 무산(霧山) 조오현 스님(1932-2018)이 좋아하는 시들의 목록에 「새와 수면」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