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5)] 김광기 '벌레들의 울음소리'
한여름 밤 창을 열면
벌레 소리 창연하게 들려온다.
도대체 몇 마리
몇 생들이 저렇게
종족을 뛰어넘는 울음들을 섞어놓고 있는 것인가.
오만가지로 섞여서 묻는 소리,
너는 또 누구냐는 듯하여
너희들의 울음을 듣고 있는 사람이라 하니
뭔 이상한 소리 하나를
또 듣고 있다는 듯
왁자지껄한 소리, 소리들 한다.
고즈넉한 숲속 같은 풍경 속에서
우리만 쓸쓸히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도대체 몇 생,
몇 종종의 생물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함께 지내고 있었던 것인가.
김광기 –벌레들의 울음소리- 전문
올봄에 김광기 시인이 실로 오랜만에 펴낸 시집 『풍경』에 들어있는 ‘벌레들의 울음소리’ 전문이다. 시인은 시집 첫 장 ‘시인의 말’에 ‘누가 읽을까 싶기도 하지만/누군가는 위안의 말씀에 기대보기로 한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슬픈 자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문학 잡지는 물론 시집도 죽어라 하고 안 팔리는 시대에 김광기 시인은 『문학과 사람』이라는 계간지를 결간없이 펴내고 있다. 또 동명의 출판사에서 시선집도 내고 있다. 어찌 보면 돈이 안 되는 일만 골라 하는 사람이다. 어쩌랴 그대의 업인 걸. 오늘 조간신문에서 ‘좋은 시란 천 사람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사람이 천 번 읽는 시다.’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읽었다. 우리 그렇게 위안 삼는 수밖에
쓸쓸하고 또 쓸쓸하다. 시인도 쓸쓸하고 읽는 이도 쓸쓸한 여름 저녁이다.
시인은 창밖에서 우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벌레들과 선문답을 하고 있다. 벌레들이 울음소리로 ‘너는 또 누구냐’고 화두를 던진다. ‘너희들의 울음을 듣고 있는 사람이라’며 답하니 ‘뭔 이상한 소리 하나를/또 듣고 있다’라며 또다시 화두를 던진다.
모두가 쓸쓸한 존재이다. ‘고즈넉한 숲속 같은 풍경 속에서/우리만 쓸쓸히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도대체 몇 생,/몇 종종의 생물들이 서로를 경계하며/함께 지내고 있었던 것인가.’ 여기서 잠깐 머뭇거리며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어가 ‘우리만’과 ‘경계하며’이다. ‘우리’는 누구일까. 시인을 비롯한 쓸쓸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숲속에서 우는 벌레들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모두일까. 그런데 ‘우리만’에서 ‘만’이라는 한 글자가 경계를 만든다. 그 경계가 우리를 쓸쓸하게 하는 것일까. 에이, 따지지 말자. 이 또한 여름날 저녁, 쓸쓸해서 펼쳐보는 부질없는 사유에 불과하다.
김광기 시인이 첫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를 펴낸 것이 1995년이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김광기 시인은 이후 꾸준한 시작과 평론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며 수원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다져온 시인이다. 아주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수료하였고 강의를 하기도 했다. 수원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시학상과 수원예술대상 그리고 수원시인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다. 충청도 부여가 고향이라고 하지만 그냥 수원의 시인이다.
김광기 시인에게 결정적인 흠이 하나 있다. 술이다. 많이 마셔서가 아니라 못 마시는 게 흠이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져서 그다음부터는 그냥 술잔만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한다. 그렇다고 술자리에서 겉도는 사람도 아니다. 툭툭 던지는 몇 마디가 언제나 예사롭지가 않다. 때로는 모두를 유쾌하게 만들기도 하고 시인으로서의 자성의 실마리를 던지기도 한다. 못 마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체질이고 그 분위기만큼은 그 어떤 두주불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마신다. 시인이다.
여전히 폭우가 종잡을 수 없게 종횡무진이다. 그러나 곧 또다시 뜨거운 여름이 이어질 것이다. 한여름 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창문을 열 것이다. 도시에서는 웬만해서 풀벌레 울음소리를 듣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귀 기울여 보리라. 미루나무 잎새 사이에서 한나절 울어대던 쓰르라미 울음소리는 잦아들었고 사위가 고요하다. 그러나 아주 천천히 다른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여전히 쓸쓸하다. 그러나 그 쓸쓸함은 씁쓸함과는 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