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아침묵상] 내 삶을 이끌어 준 10가지 말씀(58)
나는 박 의원과의 대화를 통하여 청계천 빈민들의 미래가 험난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마을 대표들을 교회에 소집하여 대책 회의를 열었습니다.
시청으로 쳐들어가 시장실을 점령하고 농성하자는 파, 대안을 제시하여 관철시키자는 파, 그리고 성동교를 점거하여 차량 통행이 불통하게 하자는 파 등으로 나뉘어져 밤새워 논의하여도 결론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결론으로 나온 것이 시청에 대안을 제시하여 살길을 열어나가도록 하도록 김진홍 전도사에게 위임하자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나는 다음 날부터 대표급 몇 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안(代案, Alternative)을 구상하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가장 우세한 안이 농촌에서 살길을 찾아 지게꾼이라도 되어 살자고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니 다시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짓고 살아가자는 안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농촌으로 집단 귀농하여 농사짓고, 세금도 내고, 자립하여 살 것이니 입주할 농토를 배정하여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자는 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함께 귀농하여 농사지을 만큼 넓은 농토가 어디에 있느냐는 문제였습니다.
판자촌 주민들은 거의가 농촌에서 상경한 사람들입니다.
농사꾼으로 살다 서울 가서 지게꾼이라도 하며 살자고 서울로 온 분들인데 시절이 바뀌어지니 지게꾼 일은 용달차에 뺏기고 하는 수 없이 노점상이라도 하며 살자고 판자촌에서 살아가는 분들인데 그나마 지하철 부지에 집터까지 뺏기게 되니 살길이 막막해졌습니다.
그래서 전면철거를 앞두고 교회에 모여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결과 차라리 농촌으로 가서 농사짓고 살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막상 농촌으로 가려니 돌아갈 농토가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하던 중에 휴전선 부근에서 군 복무를 하였던 분이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휴전선 부근에는 농사짓다 묵혀 있는 농토가 많으니 정부에 건의하여 휴전선 근방의 땅을 배정해 달라고 건의하자는 안을 제안하였습니다.
그 안에 다수가 찬성하기에 나는 주민 대표 몇 분과 함께 건의서를 작성하여 서울시청과 청와대로 등기 편지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건의서가 그렇게 큰 풍파를 일으킬 줄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편지를 보낸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새까만 짚차가 3대나 판자촌으로 달려와서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김진홍을 찾았습니다.
김진홍을 찾는 그들에게 "내가 김진홍이요. 왜 그러세요?" 하였더니 무조건 수갑부터 채우더니 짚차에 태우고는 모를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남산 중턱에 있는 건물의 지하실로 데려가더니 책상 위에 우리가 보낸 건의서를 내놓고는 물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