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아침묵상] 내 삶을 이끌어 준 10가지 말씀(59)

김진홍 목사

 

"김진홍, 이런 건의서를 올린 저의가 무엇이야?" 하며 강압적으로 묻기에 "아니 당신들 한글을 모르오. 그 안에 이유를 죄다 썼는데 왜 그러세요?"하고 답하였더니 내가 상상도 못하였던 질문으로 나를 겁박하였습니다.

"김진홍, 너 빈민들을 집단으로 데리고 휴전선 부근에 근거지를 만들어 놓고 있다가 거기서 집단으로 월북하려는 거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당신들 참 머리 좋수다. 우리는 그런 생각은 상상도 못하고 그냥 농사짓고 살 땅을 찾은 것인데 당신들은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는 거요? 당신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면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든, 전라도든, 경상도든 어디든 농사짓고 살 땅만 찾아 주시오".

나는 이틀 동안 잠도 못 자고 시달리다 겨우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배정 받은 땅이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 간척지였습니다. 남양만은 갯벌을 막아 농지와 호수로 만든 땅입니다. 

갯벌을 막아 새로 조성된 농토가 무려 960만평에 이르는 넓은 곳입니다. 그곳에 1200여 세대가 입주하여 15마을을 이루어 살게 하자는 계획인데 청계천 판자촌 철거민들을 그곳으로 입주케 되었습니다.

먼저 50세대를 1차로 선발하여 남양만 현지로 이주하였습니다. 주택이 지어지기 전이어서 천막을 치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개척자들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임시로 거주할 천막을 치고 화장실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예배처를 세웠습니다. 문제는 남양만 간척지가 소금 땅이어서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입주민들이 예배처에 모여 올해 농사가 가능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습니다. 일부는 아직 염도가 높아 벼농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고 일부는 그렇다면 우리 신세가 어떻게 되겠느냐, 서울 판자촌에서 빈손으로 내려와 벼농사를 못 지으면 가을에 가서 떼거지가 날 것인데 김진홍 전도사가 거지 대장할 것이냐고 발언하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갑론을박하다 내린 결론이 있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깁니다. 농사가 되고 안 되고는 하늘에 맡기고 우리는 도전합시다. 될 줄로 믿고 나갑시다.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서울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가봐야 있을 것도 없잖아요. 그러니 여기서 승부를 겁시다." "아멘 믿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래서 우리는 농사지을 준비를 하면서 힘을 모았습니다. 갯벌에 정치망 그물을 치고는 하루 두 차례 썰물이 나간 후에 그물에 걸린 생선들을 거두어 오고 채소가 없으니 아카시아 잎을 따오고 길가에 흔한 질경이, 고들빼기 같은 나물을 채취하여 큰 가마솥에 보리쌀 몇 말을 넣고 끓여 꿀꿀이죽처럼 하여 끼니를 해결하며 지났습니다.

모내기 철이 되어 조별로 편을 짜서 일을 분담하여 열심히 일했습니다. 간척지 농사가 성공하려면 비가 자주 와서 논바닥에 소금기를 줄여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해 따라 가뭄이 들어 비가 잘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는 비가 내릴 기운이 있는지 구름을 살피느라 목이 아프다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 해에 모를 심으면 죽고 다시 심고 하기를 되풀이하여 모심기를 네 번이나 되풀이한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