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여민동락(256)] 옛날 옛적 '견우 직녀가···'

정준성 주필

 

조선 중기 이옥봉은 ‘칠석’이란 시에서 견우 직녀를 이렇게 노래했다.

"만나고 또 만나고 수없이 만나는데 무슨 걱정이랴/ 뜬구름 같은 우리네 이별과는 견줄 것도 아니라네/ 하늘에서 아침저녁 만나는 것을/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이라 호들갑을 떠네(無窮會合豈愁思 不比浮生有別離 天上却成朝暮會 人間作一年期)"라고.

만남과 헤어짐의 시공간은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읊은 것이라해서 지금까지 애송된다. 

그런가 하면 고려 공민왕 때 학자이며 명재상이었던 익재(益齋) 이제현의 ‘칠석시(七夕詩)’도 있다. 

“애처로이 바라볼 뿐 만나기 어렵나니/ 하늘이 오늘 저녁 한 차례 만남을 허락 하였다네/ 오작교는 머나먼 은하수 원망스럽고/ 원앙 베개 위 어느덧 새벽이 안타까이 다가온다네/ 인간사 모였다 헤어짐이 없으련마는/ 신선도 역시 슬픔과 기쁨이 있는 것을"

오래 전 일이지만, 남북관계 경색 이전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협상이 진행될 때 쯤이면 곧잘 인용되던 시다.  꼭 이맘때다.

그리고 오작교(烏鵲橋)는 시와  더불어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였다.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 이곳에서 만나는 것을 비유해 이산가족 상봉을 염원해서다. 

오늘은(10일) 이런 애틋함과 절절함, 기대를 낳게 한 칠월칠석이다.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요즘이지만 왠지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칠석은 양수인 홀수 7이 겹치는 날이어서 길일로 여겼다. 이 날은 마침 '옛날 옛적 견우와 직녀가···'로 시작되는 사랑의 전설이 선남 선녀들 사이에 회자(膾炙)되는 날이다.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결혼했다. 하지만 요즘으로 치면 '금수저 백수'로 무위도식(無爲徒食)하자 할아버지 옥황상제는 크게 노했다. 

결국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 서쪽으로 추방당했다. 동서 이산가족(離散家族)이 된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까마귀들이 해마다 칠석날 나섰다. 이들의 상봉을 위해 하늘로 올라 다리를 놓아 준 것인데  바로 오작교의 탄생의 비밀이다. 

견우직녀는 매년 칠석이되면 이 다리에서 짧은 만남을 갖고 1년 뒤를 기약하며 헤어진다.

한여름 밤하늘 별똥별 같은 얘기지만 지금도 동쪽에 직녀성이, 서쪽에서는 견우성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설화속 진실로 우리 곁에 남는다.

폭염의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열대야도 기승이다. 오늘 모처럼 '별이 빛나는 밤'을 즐겨봄도 괜찮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