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19)] 성명순 '시시하게 살자'
시시하게 살자
성 명 순
시시하게 살자
문지방을 넘기조차
힘겨운 저녁이 있다
그런 저녁이 오히려 참 시시하다
옷장 앞에서 설레던 아침의 망설임도
거울에 번지던 립스틱의 종알거림도
여름날 저녁 은빛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쓰르라미의 울음만큼이나 시시하다
내 하루는 저 울음보다 빛이 났던가
이제 부질없는 욕심은
접을 때가 되었음을 안다
시시하게 사는 일이 가슴을 적시는 저녁
그렇게 젖은 가슴이
셀로판지처럼 빛나는 시간들보다
오히려 더 소중함을 이제는 안다
그래, 시시하게 살자
겨울날 같았으면 한밤중이련만 긴 여름날의 해는 인제야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더위와 이런저런 번잡한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진종일 창문을 닫아 놓은 탓에 집 안도 푹푹 찌고 숨이 막힌다. 열 수 있는 창문은 모두 연다. 시인은 겨우 앉아서 숨을 고른다.
‘여름날 저녁 은빛으로 쏟아져 들어오는/쓰르라미의 울음만큼이나 시시하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조바심을 내고 종종거렸던 것인가. 갑자기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창문을 연 탓이다.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나의 하루가 저녁나절 은빛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저 청량한 쓰르라미 울음소리보다도 오히려 시시했다.
그러면서 ‘내 하루는 저 울음보다 빛이 났던가/이제 부질없는 욕심은/접을 때가 되었음을 안다’라며 시인은 자성의 시간을 갖는다. ‘옷장 앞에서 설레던 아침의 망설임도/거울에 번지던 립스틱의 종알거림도’ 저녁나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사실은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역설이다. ‘시시하게 사는 일이 가슴을 적시는 저녁’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허명을 좇아가며 사는가. 별것도 아닌 일에 자신을 내세우고 우쭐하며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본성을 지키는 일을 외면하고 이익에만 집착하거나 본질을 잃고 껍데기에 불과한 찬란한 자리만 찾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 찬란한 시간은 마치 ‘셀로판지처럼 빛나는’ 메마른 순간들이었다. 만지면 바스락 소리를 내는, 생명의 물기를 상실한 시간이었음을 알기에 시인은 시시하게 사는 일이 오히려 가슴을 적신다고 한다.
위의 시는 2022년 12월 펴낸 성명순 시인의 시집 『시시하게 살자』의 표제시이다. 시집의 표제가 그래서였던가. 요즘 시집을 보면 안에 들어있는 시보다 표지나 장정의 화려함으로 한몫하는 시집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이 시집은 마치 옛날 문고판처럼 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에 무광의 표지가 시선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억지스러운 강요라고도 할 수 있는 겉치장에 멀미가 나는 일이 많다. 시의 끝 행에 ‘그래, 시시하게 살자’라는 시인의 다짐에 전적으로 공감하기에 다시 읽어본 시이다.
성명순 시인
2012년 『청암문학』 신인상
황금찬 문학상, 한국농촌문학상, 수원예술인상 등 수상
시집 『시간여행』, 『나무의 소리』, 『시시하게 살자』
한·독 시집 『하얀 비밀』
세종학교육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