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만 간척지에서의 생활이 뿌리를 내려가면서 농촌 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를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벼농사만 지어서는 가계 경제를 제대로 이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수입이 한정되어 있으니 헌금하고 싶어도 헌금할 여유가 없고 자녀들 교육시키는 일에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제대로 뒷바라지하기 어려웠습니다.
거기에다 농업협동조합에서는 연방 밀린 납부금을 독촉하는 연락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청계천 선교에서처럼 남양만 주민회를 조직하고 간척지에 입주한 1200 세대, 15 마을 대표들을 모아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한 방안을 토론하였습니다.
거기서 얻은 결론으로 부업 단지를 조성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논의를 거듭한 결과 양돈 단지, 젖소 단지, 비육소 단지 등을 세워 공동 운영하여 농민들의 소득을 증대시키고 마을 발전을 이루어 나가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호주에서 좋은 종자 돼지 92 마리와 비육소 560 두를 도입하여 마을마다 자원 농가들에게 분양하여 축산 단지를 이루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엔 잘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돼지고기 파동이 닥쳐와 돼지를 먹이면 먹일수록 빚만 쌓이게 되었습니다.
돼지고기 한 근에 700원은 돼야 사료비가 나오는데 200원에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다 소 값마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니 교회 말을 듣고 축산에 참여한 가정들이 나를 원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정 방문을 위하여 마을로 들어가면 마을 아낙네들이 내가 듣도록 말하곤 하였습니다.
"김진홍 목사는 생기기도 돼지처럼 생겨서는 돼지, 돼지 한 덕에 그 말 믿고 돼지 먹이다 집구석 망하게 되었다."
나는 그 말 듣고 민망하여 그 말하는 아낙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은 너무 허요. 내가 잘 생기지 못한 건 나도 알지만 돼지 닮았다는 건 너무 허요"
그랬더니 아낙네들이 화난 얼굴로 답하였습니다.
"우리 말에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요. 화가 나서 그러지. 실제는 목사님 얼굴이 돼지보다는 쪼깨 낫습니다."
돼지고기 파동은 날이 갈수록 심하여지고 주민들은 사료 사 올 돈도 없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면 10 마리, 12 마리씩 쏟아져 나왔습니다.
급기야는 마을 주민들이 감당치 못하게 되어 돼지 새끼 100 여 마리를 손수레에 싣고는 갯벌에다 버리게까지 되었습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저 어린 돼지들이 밀물이 밀려올 때면 바닷물에 휩쓸려 떼죽음을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밥맛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