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86)]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그날’이,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영원히 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나, 해방과 광복의 날  ‘그날’이 마침내 왔었다. 도둑처럼 온 것이 아니다. 1943년 카이로 선언의 해당 조항도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와 투쟁 때문에 가능하였다. 2차 대전 종료 세계정세와 우방의 조력에 힘입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19세기 말 이래 불퇴전 항일을 이어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 망국 날부터 가열 차게 추진한 희생과 헌신의 독립운동, 선열들을 위시한 우리 선인(先人)들의 막심한 투신과 순난(殉難)에 힘입어, 1945년 8월 15일에 ‘그날’이 왔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그날이 오면」/심훈(1901-1936)

 

 널리 알려져 있는 대로 이 시는 역시 암울하였던 1930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가정으로 쓴 희망의 작품이며, 시인도 15년 뒤 ‘그날’을 당면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2024년 79주년 8.15광복절 직후에도 1930년과 1945년 8월 15일의 상황을 겹쳐 연상하면서 이 시를 다시 읽고 있다. 우리는 선인들의 승선유후(承先裕後) 덕택으로 전지 시점에서 이 시를 읽으며, 한편으로는 시인과 당대 선인들을 대신하여 읽기도 하면서 여러 감회에 사로잡히는데, 그 회포는 두 쪽으로 갈라진 79주년 광복절 행사로 해서 근년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사생(死生)을 초월한, 아니 사생에 사무친 시인의 도저한 기원, 작품을 찢고 폭발하는 독립 염원과 심정은 그래서 더 생생해지며, 시인만이 아니라 ‘종로의 인경(人磬)’[보신각 종]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고 ‘기뻐서 죽사’올 당대 모든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들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한다. 우리도 그 시절로 돌아가면 우리도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까마귀’의 그 의지는 간절 무비한 독립 염원만이 아니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그러겠다는 의지를 함축하고 있는데, 나아가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선인들의 ‘깨어진’ ‘두개골’, 그 ‘산산조각’이기도 하다. 또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만든 ‘커다란 북’과 그 ‘북’이 울리는 ‘우렁찬 그 소리’를 우리는 제대로 다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더 이상 ‘삼각산’은 ‘더덩실 춤’ 추지 않을 것이고, ‘한강물’은 ‘뒤집혀 용솟음’ 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 79주년 광복절 전후하여 우리는 심각한 국론 분열을 겪고 있고, 곧 다른 현안이 관심 대상으로 교체되겠지만, 그 요인과 갈등은 지속되면서 언제든지 재발이 거듭될 것이어서 우국을 떠나서도 우울할 사람이 많은 듯하다. 온갖 과도한 관련 파쟁의 목소리로 나라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이때 비연구자로서 이 문제에 관련된 의견 제시를 삼가야 하겠으나, ‘건국절(建國節)’이 시비의 주요 대상이 되거나 논란을 확산하는 단초로 삼는 국면은 아무래도 이상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건국절 제정 동향 존부(存否)와 그 여부(與否)를 떠나 그 논란에는 우리가 서로 충돌하거나 그 왜곡된 파문을 감내해야할 어떠한 이유나 가치도 없다. 새삼스럽지만, 이미 정리되어 있는 역사 사실을 그저 연속 연계하며 헤아리고 음미하면 어느 쪽도 무난할 것이기에.    

 우리는 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1945년 8월 15일에 일제가 패망하고 1910년 8월 29일 이래 일제의 지배에서 우리 선인들이 풀려났으며, 1948년 8월 15일에 UN의 조력으로 그해 5.10총선과 7.17헌법제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는 사실을. 또 일제 치하 1919년 3월 1일부터 민족 대부분이 더욱 각성하고 의지를 가다듬어 일제의 지배를 강력하게 부인하며 독립운동을 본격 펼쳤으며, 같은 해 4월 13일에 드디어 그간 민족의 여망을 받들어 지도자들이 국호를 민주공화정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명명하고 헌장을 제정하며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는 사실도. 그리고 1945년 8월 15일에 이르기까지 선열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선인들이 더욱 계속 무수한 희생과 고난을 치르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고. 

 새삼스럽기 짝이 없지만 1910년 이래 시대 상황을 그 이전부터 다시 점검하면, 1910. 8.29. 대한제국 망국. 일제 지배와 독립운동 시작 ⟶ 1919. 3.1. 거족 차원 독립운동 발발 ⟶ 1919. 4.13.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다각 투쟁 전개 ⟶ 1945. 8.15. 일제로부터 해방 ⟶ 1948. 8. 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독립운동 시각에서 다섯 큰 사실을 애초에 모두 기념하였으면 좋았을 텐데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특히 1919년 4월 13일과 1948년 8월 15일의 의의를 별도 특정 명칭으로 기념하지 않았는데, 아마 둘 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의 의의에 포괄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두 날은 1945년 8월 15일의 ‘광복’과 같은 의의로 병렬하거나 수렴할 수 있다. 더욱이 1948년의 8월 15일은 1945년의 8월 15일과 날짜가 같지 않은가. 그리고 1945. 8.15와 1948. 8.15는 우리 헌법의 전문에서도 제시되어 있듯, 1919년 3.1운동을 승계한다.[“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 계승하고”] 

 세 날은 통합되어야 하고 통합되어야만 비로소 온전해지는 광복(光復), 복국(復國)의 빛줄기들이다. 셋은 한 맥락에 연속되며 서로 보완하는 하나이다.[8.15 광복절의 개념과 제정 의의 : ‘잃었던 국권을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을 경축하며 독립정신의 계승을 통한 국가발전을 다짐하기 위함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셋을 취합(聚合)하여서만 건국절을 논의할 수 있다. 또 굳이 그러려고 한다면 다만 이 용어를 이전과 구별하여 반드시 ‘민주공화정’을 전제로 하여 언급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1948년 8월 15일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두고 건국절이다, 아니다면서, 편향 논란을 벌리며 무용한 갈등을 증폭할 필요가 없다.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날이 오면」의 시인의 심정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1948. 8.15가 건국절이라는 분들이 적어도 1910. 8.29 이래 우리 선인들의 불굴의 독립투쟁과 업적을 두 손 모아 기린다는 사실을. 또 1948. 8.15가 건국절일 수 없다는 분들이 1948. 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시하지 않고 그 이전을 빛나게 하고 이후의 진로에 필수였다고 평가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