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20)] 이경렬 '절골에 들어 휘영청 금낭화를 만나다'
절골에 들어 휘영청 금낭화를 만나다
이 경 렬
삶이 다 아름답기만 하랴만
지나치는 젊은 연인의 탄성이 그대로 걸리고
노부부의 무심한 듯 넉넉한 미소도 열리고
삶이 다 힘들기만 하랴만
어쩌다 어깨 무거운 사내의 숨소리도 매달리고
외로운 눈을 가진 여인의 눈물도 맺히고
나로 인해 만들어진 아픔들, 슬픔들
일찍이 몇 개만이라도
이렇듯 다소곳이 매달 줄 알았다면
살아가며 견디는 무게
일찍이 조금만이라도
이렇게 아름답게 매달 줄 알았다면
* 절골 : 발교산(횡성군)의 청일면 봉명리 계곡. 야생화가 많은 육산.
필자도 한때는 산을 자주 찾았다. 그런데 무리져서 등산을 한 일은 거의 없던 것 같다. 혼자이거나 많아야 그저 마음에 맞는 사람 두셋이 전부였다. 산을 오르다 보면 무슨 무슨 산악회라고 적힌 옷을 입고서 거의 대개가 마치 산악훈련이라도 하듯이 앞을 다투어 황급히 오른다. 내게는 그럴 체력도 없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다. 급하거나 부드러운 비탈길을 그에 걸맞게 천천히 오르거나 내려 걸으면서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듣기도 하고 여기저기 핀 작은 꽃 혹은 풀잎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나뭇잎들이 부어놓은 연둣빛 그림자에 몸을 담그고 앉아 쉬는 게 성급히 산의 정상을 밟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이다.
위의 시는 이경렬 시인이 2023년 3월 펴낸 그의 네 번째 시집 『산객(山客)』에 들어있는 ‘절골에 들어 휘영청 금낭화를 만나다’의 전문이다. 이경렬 시인은 백두대간을 완주한, 유별나게 산을 좋아하는 시인이다. 시집 『산객(山客)』은 표제처럼 시인이 산객이 되어 이 땅의 유 무명의 산들을 찾아 얻은 시상들을 팔십여 편의 시로 채운 시집이다. 명산에 명찰이 많은 까닭일까. 대부분의 시편이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 시가 그중 그런 색깔이 적다.
시인은 오늘도 산을 찾았다. 강원도 횡성군의 발교산이다. 여기저기 소담스레 혹은 다보록히 모여 핀 꽃들이 시인의 산행에 말을 건다. 한쪽에 휘영청 굽은 자줏빛 꽃대궁에 무수히 걸린 앙증맞은 비단 주머니들 같은 금낭화가 눈에 들어온다. 시인은 핑계 삼아 골짜기에 멈춰 쉬며 숨을 고른다. 많은 사람이 그 앞을 스쳐 지난다. 젊은 연인도 있고 노부부에 일상에 지친 듯한 사내도 있다. 그 흔들리는 꽃송이에 그들의 탄성과 넉넉한 미소 혹은 힘든 숨소리와 눈물이 걸리고 열리는가 하면 매달리고 맺히기도 한다.
‘나로 인해 만들어진 아픔들, 슬픔들/일찍이 몇 개만이라도/이렇듯 다소곳이 매달 줄 알았다면//살아가며 견디는 무게/일찍이 조금만이라도/이렇게 아름답게 매달 줄 알았다면’
생각해 보니 나의 모든 아픔과 슬픔이 다 내가 지은 것들이었다. 시인은 돌이켜 본다. 나는 그 아픔과 슬픔 혹은 살아가며 견뎌야 하는 무게들을 어떻게 했던가. 그러면서 가정을 나타내는 종속절 ‘매달 줄 알았다면’이라는 시어로 시를 닫고 정작 그 뒤에 이어질 답이 될 수 있는 말들을 아낀다. 그 답은 독자가 찾으라는 것일까.
더위가 가기 시작한다는 처서이다. 그래도 계절을 잊은 폭염이 꺾일 줄을 모른다. 하지만 백로 지나고 추분이 되면 더는 기승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 척추디스크 질환에 무릎마저 시원찮은 사람에게 산행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그때가 되면 지팡이라도 짚고 나지막한 인근 야산이라도 찾아볼 생각이다. 산그늘에 핀 구절초의 전언이라도 받아들이고 이경렬 시인께 연통을 넣어 탁주 한 사발에 꽃 이야기 한 잎을 띄우리라.
이 경 렬 시인
경기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문협, 한국현대시인협회, 경기시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
경기문학인상 외 다수 수상
시집 『내 강물의 거주지를 위하여』 외
백두대간 완주 수상록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