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이자 일상이 된 산책 코스 중에 유난히 심신이 평안해지는 곳들이 있다.
화성 성곽 북쪽에 조성된 동공원, 팔달산 서쪽 회주도로, 광교산 광교저수지 둘레길, 광교신도시 호수공원 윗방죽(신대저수지) 둘레길, 봉녕사, 칠보산 산책로, 그리고 지지대 고개 못 미쳐 이목동에 조성된 노송숲이다.
노송숲은 원래 옛 1번 국도가 지나가던 길이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능행차 길이기도 했고 삼남에서 서울로 가던 관리나 상인, 선비들이 이용하던 국도였다.
노송숲은 이목동 일원 5만 6000㎡ 넓이 노송지대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현륭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임금 개인재산)을 하사해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도록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노송들은 수난을 당했다. 자동차 매연과 진동, 그리고 일부 관광객과 시민들의 몰지각한 행위로 노송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강점시기인 1938년 조사에 따르면 장안문 밖에서 지지대에 이르는 큰 길 가에는 500여 그루의 노송들이 서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68년 사진에도 대유평에서 만석거에 이르는 길가에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점점 줄어드는 노송들을 보호하기 위해 1973년 7월 노송지대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했다. 지정 당시 150여주의 노송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974년 한 지역신문에 ‘솔잎혹파리 병충해가 번져서 소나무 20그루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그 뒤 해마다 3~4그루씩 죽어 1986년에는 86그루가 남았다.
지금은 고작 34주(효행기념관 인근 9주, 장안로 346번길 인근 19주, 송정초등학교 인근 6주)만 남아 있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점점 고사해 노송지대의 이름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수원시는 자동차 매연과 진동으로 인한 노송의 훼손을 막고, 자연유산 보존을 위해 2016년부터 ‘노송 지대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2016년 5월엔 노송ㅎ지대를 통과하는 도로를 폐쇄하고 우회도로를 개설했다. 이에따라 과거의 1번 국도는 차가 다니지 않는 도보 산책길이 됐다.
2017년부터 노송 지대 주변 토지를 사들여 도로포장을 걷어내고 1만2085㎡에 이르는 녹지에 소나무와 함께 풍·수해를 방지해 주는 식물을 심어 노송지대를 복원했다. 수원시는 복원 구간에 초화류(관상용 꽃)를 추가로 심고, 이목지구 내 남은 노송길(약 340m)도 정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송지대를 복원해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 국립산림과학원 유전자원부, 경기도산림연구소와 함께 노송 후계목 증식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고색동 양묘장에서는 후계목을 키우고 있다.
수원시의 후계목 식재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2021년 3월에도 수원시 공직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이목동 노송지대에 노송 후계목 50주를 심었다. 이목동 767번지 일원에 심은 노송 후계목은 수원시가 2017년부터 고색동 양묘장에서 기른 것이다.
수원시는 2016년, 국립산림과학원 유전자원부와 경기도산림연구소 협조를 얻어 노송 유전자(DNA)를 분석해 노송 후계목 증식을 추진, 2017년부터 우량목 꺾꽂이모(꺾꽂이를 위해 잘라 낸 식물의 싹) 접목방식으로 고색동 양묘장에서 후계목 1000주를 양묘했다. 노송 후계목은 노송 지대뿐 아니라 관내 학교, 공원, 녹지 등에도 심기로 했다.
후계목으로 심은 크고 작은 소나무는 쑥쑥 성장해 숲을 이뤘다.
수원시는 노송 후계목을 꾸준히 양성·관리해 보존하고, 역사적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후계목의 생육 환경·적응 기간을 고려해 이식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송지대는 1973년 경기도지방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됐고, 최근 국가유산체제 시행에 따라 경기도 자연유산 제1호로 지정되는 등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녹색도시 우수사례’(2017년), ‘수원시 제1호 모범도시 숲’(2023년)에 선정된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도 산림청이 주관한 ‘아름다운 도시숲 50선’에 선정됐다. ▲접근성 ▲생태적 건강성 ▲이용률 ▲경관적 가치 등을 심사한 결과다.
노송지대는 딸기와 포도로도 유명했다. 다음은 내가 한 매체의 칼럼에 쓴 내용이다.
‘한 때 노송지대의 포도와 딸기밭에는 푸른지대 만큼이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봄이면 딸기, 가을이면 포도를 먹으러오는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힐 정도였다. 1967년도 한 지역신문에 따르면 1966년도에 노송지대 딸기와 포도를 먹으려고 찾아온 외래객이 15만 명 정도였고, 딸기와 포도의 매상고는 489만원이었다고 한다. 1966년 수원시 전체인구가 12만7733명이었고 당시 시내버스 요금이 5원, 라면 1봉지 값이 10원이었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사람이 몰렸고 만만치 않은 매상고를 올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노송지대의 딸기밭과 포도밭은 사라져 추억 속에서도 가물가물 멀어져 간다. 그러나 이처럼 산책하면서 역사를 생각할 수 있는 노송숲으로 다시 돌아왔으니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