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의 문학잡설(87)] ‘새로운 희망 길을 나아갈 때에’

김승종 / 시인 · 전 연성대 교수

 

 지난 8월 23일에 일본 효고현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불린 ‘京都國際高(경도국제고)’의 한국어 교가를 우리는 경청하였고, 마음이 기립한 상태에서 감회가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 아시다시피 1947년에 재일 교포들이 세운 ‘경도조선중’으로 출발한 이 학교는 1999년 야구부 창단 첫해에 치른 경기에서 0대34로 졌고, 현재 재학생이 159명에 불과한데도 3715개 학교가 참가하고 49개 팀만 본선에 진출한 제106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재학생의 70%와 야구부 선수들 모두와 감독이 일본인인데, 한국어 교가 제창 상황에서 우리는 그 시공에 매이면서도 넘어서는 어떤 메시지를 문득 직관할 수 있었던 듯한데, 설명하기가 쉽지 않고 전부가 아닌 듯하며, 교가의 여운은 길었다. 그 1절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대로 다음과 같다.

    

동해(東海)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 「京都國際高(경도국제고) 교가」/ 변낙하(邊洛河) 작사 ‧ 김경찬(金瓊燦) 작곡

 

 1행과 2행에서, 한국인들의 일본 거주의 유래를 일본이 최초로 통일을 이루었던 야마도 시대[3세기 말-7세기 중엽]로 소급하면서, 긴키(近畿)의 야마도 지역[나라현, 교또부 포함]이 6-7세기에 한반도에서도 활발하게 도래(渡來)하였던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였다는 회고부터 시작하여 주목을 끈다. 당시 함께 유입되었던 한반도의 문물이 아스카문화의 주요한 기초가 되었다는 함축도. 신라계 하다노 카와카쓰(秦河勝)가 건립한 고류지(廣隆寺)도 그 하나로 유명하며, 한반도의 소나무로 만들어져 전래한 이 절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123cm]은 오늘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국보 제1호이기도 하다. 20세기 전반에 한국인들이 피식민 백성으로 주로 징용으로 열도 이주가 이행되었지만, 간직하던 자존과 포부를 제대로 드러냈다고 하겠다.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를 다시 ‘보금자리’ 삼아, 야마도 시대의 그 ‘꿈’을 계승하여 새 시대에 기여할 ‘몸과 덕 닦’겠다... 한반도의 우리보다도 일본인들이 생래의 역사의식과 더불어 제대로 주목하고 음미하여야 할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교가의 후속 가사가 궁금하였다. 다행히 인터넷 김대일 블로그에서 2, 3, 4절을 읽을 수 있었다.       

 

사해(四海)를 울리도다 자유의 종은

자주의 정신으로 손을 잡고서

자치의 깃발 밑에 모인 우리들

씩씩하고 명랑하다 우리의 학원

 

 ‘사해를 울리’는 ‘자유의 종’소리는 일제 이데올로기 철폐와 제2차 세계대전 종료에 맞물려 연속되는 세계 도처의 식민지 해방의 환희를 포괄하며, ‘자주’와 ‘자치’는 그 ‘종’소리가 부각하는 가치이자 지향이다. 즉 제국의 신민에게 주입되었던 복종과 타율을 무산시키고 주체와 자율의 시민의식을 공고하게 하는 이념. 나아가 학생들이 연대하면서 이전의 기색과는 달리 ‘씩씩하고 명랑’한 기상을 당당하게 유지하기를 자찬(自讚)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음 3절에서는 먼저 ‘해바라기’를 부각한다.            

 

해바라기 우리의 정신을 삼고

문명계의 새 지식 탐구하면서

쉬지 않고 험한 길 가시밭 넘어

오는 날 마련하다 쌓은 이 금당(金堂)

 

 ‘해바라기 우리의 정신을 삼고’에서 ‘해바라기’는 기존의 ‘힘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아부하는 능력 없는 사람’의 은유가 물론 아니다. 해가 뜨면 동쪽으로 구부러졌다가 해가 지면 서쪽으로 구부러지며 무럭무럭 성장하는 해바라기의 생리를 ‘문명계의 새 지식 탐구’와 ‘쉬지 않고 험한 길 가시밭 넘어’가는 ‘정신으로 삼’자는 취지에서 알 수 있듯, ‘빛나는 성장’을 주제로 하는 표상이다. 더욱이 해바라기는 수많은 개개의 꽃들이 사이좋게 결속한 집합체이며, 그 최종 목표는 자립(自立). 성장한 연후에 해바라기는 자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중심을 잡고 기립한다.  

 그리고 이 3절의 3행 ‘쉬지 않고 험한 길 가시밭 넘어’에는 삶의 의지와 더불어, 재일(在日) 우리는 1947년 현재 이제 형편 상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디아스포라, 그 역경과 트라우마까지 각오한 각성과 진로. 그 심정을 우리가 제대로 헤아리기 어렵고, 우리의 시선은 복잡해지고 흐려진다. 그래서 4절이 없어서는 안 되었던 것인가.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

새로운 희망 길을 나아갈 때에 

불꽃 같이 타는 맘 이국땅에서 

어두움 밝히는 등불이 되자             

 

 용기를 북돋는 장려의 목소리. 이곳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이지만 한편 ‘이국땅’이기도 하기에, 이곳에서의 삶을 위해 기죽지 말고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이라고 격려한다. 또 ‘새로운 희망의 길’에 나서며 그 ‘불꽃 같이 타는 맘’을 늘 피워 올려 ‘어두움 밝히는 등불이 되자’고 역시 장중한 어조로 스스로 권장하게 한다. 

 현재 다시 말해 경도국제고 재학생의 30%만이 재일 한국인이고, 또 이 학교의 야구부 창단이 신입생이 점차 줄어들어 그 폐교를 우려한 타개책의 하나였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았다. 이러한 현실이 그 교가를 듣는 우리의 의식에 그림자로 비껴 동반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래서 유감스러웠고, 유감스러운가. 아니다. 긴키 지역에 정주한 이후 여러 사정을 거쳐 일반고로 진학했던 한국계 일본인 학생들에게도 같은 찬사와 위로를 보낸다. 그 교가를 떠나서도 ‘어두움 밝히는 등불’은 일본에도 언제나 필요하고, 제국의 망집에서 벗어난 일본이 진정한 야마도다마시(大和魂)를 정립하며 세계에서 그렇게 되기를 세계가 요청하고 있다. 아니 그래야 할 의무가 있다. 경도국제고의 교가를 다시 들으며 우리, ‘동해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일찍이 ‘야마도 땅’에서 펼쳤던 ‘거룩한’ ‘조상’의 그 ‘옛적 꿈’을 기억하고 승계하고 있는 재일 한국인과 한국계 일본인들에게 그간 디아스포라를 포함하여 그 이력을 거듭 찬사로 위로하고 향후 축복을 축원하자. 최소한 한국계 일본인들을 재미 한국계 미국인처럼 자연스럽게 수용하기도 하면서. 

 그날 이후 일본 극우에서, “교토국제고를 고교야구연맹에서 제명해야 한다”, “한국어 교가에 기분이 나쁘다”, “교토의 수치” 등 혐한 발언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래서 유감스러운가. 그런데 우리는 그날, 한국어 교가를 자연스럽게 부르는 일본의 신세대도 보았다. 교가를 일본어로 개사하기를 사양했던 선배들처럼. 그들이 펼칠 ‘새로운 희망 길’ 또한 주목하며, 그 전개도 부디 순조롭기를 기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