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여민동락(259)] 국민 절반이 '울분' 상태라니···
“석탄 백탄 타는데”로 시작하는 경기민요 '사발가(沙鉢歌)' 가 있다. 1910년 한일병합 무렵 민족이 지닌 울분을 토로한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에 에헤 에헤야 어여라난다 디여라 허송세월을 말아라"라는 후렴도 후렴이지만 가사 내용이 '울분'에 찬 사람 마음을 잘 표현했다 해서 일제 강점기 애창됐다.
가사를 보면 이렇다.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펄펄 나구요/요 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없구나(후렴)"
" 무정세월 양유파 흘러흘러 가는데/인간칠십고래희(人間七十古來稀)인데 꿈같이 사라진 요 내 청춘(후렴)"
"옥빈홍안(玉鬢紅顔) 다 늙어도 알아 줄 사람 그 누구요/세상천지 넓다 해도 내 갈 길은 전혀 없네"(후략)
가슴에 가득히 쌓여 있는 분기(憤氣)를 일컫는 울분(鬱憤)을 왜 '토한다'고 했는가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이러한 울분을 현대 의학계에선 '외상 후 격분장애'라고도 한다.
정신적 고통이나 충격 이후에 부당함, 모멸감, 좌절감, 무력감 등이 지속적으로 빈번히 나타나는 부적응 반응의 한 형태라 해서 질병에 속한다.
여기서 격분 또는 울분이란 인간이 가진 독특한 감정 중 하나를 말한다.
다시 말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에 근거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장애를 일컫는다.
그리고 3개월 넘게 이어지면 중증에 속한다. 최근 우리 국민 절반이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놓여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그것도 선진국의 3배가 넘는다고 하니 '헬조선'이 따로 없다. 일제 강점기 시대도 아닌데 말이다. 세부내용을 보면 더 참담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지난 6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전국 성인 남녀 1024명) 결과를 보면, ‘장기적 울분 상태’로 평가되는 비율이 49.2%에 이르렀다.
9.3%는 ‘심각 수준 울분’을 보였으며, 특히 30대에서 13.9%로 심각한 울분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자신을 하층으로 인식하는 이들의 ‘장기적 울분 상태’는 60%에 이르렀다.
개중에는 울분은 질병·사망·이별과 같은 슬픈 경험보다 공공기관이나 직장, 학교 등에서의 부당한 취급, 모욕 혹은 배신의 경험자가 특히 많았다.
이는 '공정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과 상통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울분' 터지게 하는 것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4차례 진행됐는데 조사 때마다 47.3~58.2%에 이르는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울분'은 '자살'과도 연관성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살률 세계1위'의 오명이 어색치 않다.
살면서 너나없이 부당하고 모욕적이며 신념에 어긋나는 스트레스 경험이 많다는 것은 살만한 세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민의 행복한 삶을 책임져야할 정부와 정치권은 예나 지금이나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하고 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잘못이다.
참으로 고약한 고질병이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