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송 일본답사기]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간 여행(2)

김주송(고려대 대학원 석사과정)
조선통신사 상륙 엄류비. 2001년 한일 선린 우호의 증표로 한일의원연맹 김종필 회장(전 국무총리)이 비문을 써서 세웠다. (사진=김주송) 
조선통신사 상륙 엄류비. 2001년 한일 선린 우호의 증표로 한일의원연맹 김종필 회장(전 국무총리)이 비문을 써서 세웠다. (사진=김주송)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간 여행 둘째 날 오후 일정은 히메지 근교에 있는 다쓰노시의 무로쓰(室津) 해역관이다. 이곳은 고베지역으로 가기에 앞서 사신단이 정박하여 머물렀던 곳이다. 

그러다보니 이번에 방문했던 곳은 어느 곳보다도 통신사의 자취가 짙게 느껴지는 곳이다.

무로쓰 해역관에는 에도 막부시기 조선통신사에게 공급했던 음식이 복제품으로 전시되어 있어 이 지역에 당도한 사절단에게 어떤 식사를 제공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복제품이지만 당시 조선통신사 행렬를 엿볼 수 있는 병풍도 있어 당시 거대하고 위엄 있는 행렬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이외에도 1748년 일본으로 파견된 조선통신사가 이곳에서 묵고 간 숙박 기록이 남아있어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였볼수 있었다.

무로쓰 지역은 조선통신사 외에도 당시 참근교대(參勤交代:일본 에도시대 때 막부가 지방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를 했던 일본 영주들도 세토 내해를 지나 에도로 향했던 코스였다. 시코쿠 등지의 영주들이 무로쓰 해역관에서 참근교대를 위해 이곳에 머물던 문서들도  많이 남아있었다.

무로쓰 항구는 조선통신사를 비롯해 세토 내해를 왕래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했던 기착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역관은 비록 19세기의 건축물이지만 2층 건물로 지어졌음을 볼 때 중간 기착지로서 크게 번성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답사여행은 통신사가 오사카로 향하는 경로를 거꾸로 좇아가는 여행이었다. 첫날은 최후 정박지이자 도착지인 해변을 살필 수 있는 높은 산에서 통신사 루트를 조망 할 수 있었고 , 그 다음날은 오사카로 향하는 길에서 무로츠를 살펴보았고, 셋째 날에는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출발한 사신단 행렬이 대마도, 이키섬, 아이노시마를 거쳐 세토 내해의 관문인 시모노세키를 조망할 수 있었다.

시모노세키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장소가 두 곳이 있었다. 하나는 이들이 상륙한 지역에 2001년에 세운 비석이고, 다른 한 장소는 이들이 머물렀던 아미타사(阿彌陀寺)의 터에 창건된 아카마신궁(赤間神宮)이다. 부산에서 출발한 사신단은 대마도, 이키섬, 아이노시마를 거쳐 세토 내해로 들어가기 전 시모노세키에 정박하였다는데, 이때 아미타사 정면에 특별히 설치된 잔교로 상륙했다. 

지금도 이 두 곳을 살펴보면, 신사 바로 맞은편에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계단이 위치해 있고, 그 한켠에 통신사들이 이곳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통신사 상륙엄류지비(朝鮮通信使 上陸淹留之碑)가 설치되어 있다. 

시모노세키는 원래 아카마가세키(赤間關)라고 불렸다. 지금의 지명으로 변한 것은 1902년이라고 하는데,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다는 아미타사(阿彌陀寺) 터에 창건된 신사의 이름인 아카마신궁(赤間神宮)에서도 이러한 옛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쓰노 시립 무로쓰해역관, 고베지역으로 가기에 앞서 사신단이 정박했던 곳. (사진=김주송)
다쓰노 시립 무로쓰해역관, 고베지역으로 가기에 앞서 사신단이 정박했던 곳. (사진=김주송)

이 이외에도 1905년부터 부관연락선이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 사이의 항로가 연결되었는데 1945년 광복 이후 단절되었다가 1970년부터 다시 재개되었다. 시모노세키 지역은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일본과 한국을 이어주는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지역에는 헤이케카니(平家蟹)라는 게가 많이 잡히는 지역인데, 시모노세키와 기타큐슈시의 모지 지역 사이의 간몬해협에서 헤이안 시대 전개됐던 단노우라 전투와 관련된 전설이 이 게와 관련하여 전해지고 있다. 

즉 이때 해전에서 죽은 사람들이 게가 되어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신사가 머물렀던 신사에도 이 전쟁과 관련한 내용이 전해지는데, 전쟁에서 패하면서 다이라노 도키코와 안토쿠 천황이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일설이 전해지고 있다.

나고야성 천수각 터,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위해 1591년부터 1592년에 걸쳐 5개월 만에 완성한 조선침략 전진기지. (사진=김주송)
나고야성 천수각 터,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위해 1591년부터 1592년에 걸쳐 5개월 만에 완성한 조선침략 전진기지. (사진=김주송)

셋째 날 오후에는 사가현에 있는 나고야성 박물관과 나고야성으로 향했다. 

간몬 해협에 놓여있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길이 심하게 막히기 시작하여 도착해보니 박물관 폐관이 목전에 다다라 있었다.

따라서 급하게 들어가 돌아보니, 나고야성 박물관에서는 그 인근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유물들은 한반도의 어느 곳에서 전파된 것인지, 어느 시대 때 전파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결국 이곳의 유물들은 삼국시대 그 이전부터 한반도와 일본은 아주 긴밀하게 교류를 하고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조선통신사 파견과 관련된 조선의 공문과 유물 등 주로 한반도에서 전래된 문화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본에는 두개의 나고야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아이치현에 있는 대도시인 나고야(名古屋)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사가현 가라쓰시에 있는 나고야(名護屋)지역이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후자 나고야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을 위해 군사기지로 조성한 지역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휘 하던 나고야성을 중심으로 반경 3km 지역에 전국 각 지역의 다이묘들을 주둔시켰다. 

나고야성은 여타 다른 일본의 성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의 성이라 할 수 있는데, 성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주변의 모든 주둔군은 물론 한반도로 향하는 바다까지 넓게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곳이었다. 

이를 통해 당시 일본이 조선침략을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답사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후쿠오카에 있는 쿠시다 신사였다. 쿠시다 신사로 가는 골목에는 쇼와(昭和) 9년(1934)에 지은 석재 도리이가 세워져 있었다. 

그 도리이에는 이 건축물을 지어서 하카타 신사에 봉헌한 하카다(博多 産子中)라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곳 신사에서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와 바다의 신 스사노오가 모셔져 있었다. 

이들이 주신으로 중앙에 모셔져 있고, 그 주변에는 그 지역에서 믿고 있는 다른 여러 신들을 모신 작은 신사들이 경내에 많이 지어져 있었다.

사진 2-4, 하카타 마츠리 때 사용한 가마. 매년 7월에 하카다 기온 마츠리가 열리는데 이때 각 마을에서 만들어진 가마를 심사하여 가장 잘 만들어진 가마를 시상하고 쿠시타 신사에 보관하고 있다. 가마앞에서 필자와 아버지 김충영님이 함께 찍었다. (사진=화성연구회)
사진 2-4, 하카타 마츠리 때 사용한 가마. 매년 7월에 하카다 기온 마츠리가 열리는데 이때 각 마을에서 만들어진 가마를 심사하여 가장 잘 만들어진 가마를 시상하고 쿠시타 신사에 보관하고 있다. 가마앞에서 필자와 아버지 김충영님이 함께 찍었다. (사진=화성연구회)

쿠시다 신사가 세워져 있는 하카타 지역에서는 7월에 하카타 기온 마츠리가 열리는데, 이때 호화롭게 만들어진 가마를 지고 행렬을 이루는 행사도 있다하며, 하카타 지역의 각 마을마다 하나씩 지역 행사에 출품할 가마를 만든다고 한다. 

쿠시다 신사 경내에는 올해에 출품하여 우승한 가마를 전시하고 있었다. 그 높이가 아주 높고, 또 파도를 비롯한 각종 모양의 장식들이 꾸며져 있어 이 가마를 메는 사람들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가이드 선생님께 들어보니, 이 가마를 지는 사람들은 재계(齋戒)를 하는 사람처럼 마음과 몸을 가다듬고 행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연습에 충실했다고 한다. 축제을 진심으로 행했음을 알 수 있었다.

쿠시다 신사의 여몽연합군 닻돌. 여몽연합군이 일본에 상륙했을 때 돌풍이 불어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몽군의 정박지에 있던 닻돌을 쿠시다 신사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김주송)
쿠시다 신사의 여몽연합군 닻돌. 여몽연합군이 일본에 상륙했을 때 돌풍이 불어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몽군의 정박지에 있던 닻돌을 쿠시다 신사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김주송)

쿠시다 신사에서 또 볼만한 것은 여몽연합군이 버리고 간 닻돌로 추정되는 돌 두 개가 있는데, 이 돌은  추정 수령 천년이 넘은 고목 은행나무 아래에 받침돌로 괴여져 전시되어 있었다. 

닻돌로 추정되는 유물은 가마쿠라 막부 당시 여몽연합군의 침공을 받은 일본의 다급함과 갑작스러운 돌풍으로 여몽연합군을 물리친 것을 신의보살핌으로 여겨 이를 기리기 위해 쿠시다 신사에 옮겼다고 전해진다. 

이번 답사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몽연합군 행적과 임진왜란관련 유적, 뒤이어 행해진 조선통신사의 행로를 확인함으로써 당시 한국과 일본 사이에 행해졌던 역사를 확인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