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다리 떨릴 때 떠나지 말고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고 했다. 여행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처서가 지났지만 태양은 이글이글하다. 열대야는 계속 끊임없을 즈음 우리는 백두산 여행을 했다.
대한노인회 권선구 지회장인 필자가 지난 월례회의에서 “한라산까지는 가보았는데 정작 역사가 깃든 백두산은 가보지 못했다. 뜻이 있는 경로당 회장님들이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다.
대한노인회는 재정이 열악한 구조라 자부담인데도 불구하고 선뜻 30여명이 넘는 인원이 그 자리에서 신청했다. 그 후 인원은 더 많아져 최종 38명이 신청했다.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 여행은 8월 25일부터 28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실시됐다.
견학 첫날 일요일 아침 5시, 지회 사무실 앞에 집결해 인천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슴이 설레었는지 무려 절반이 넘는 인원이 4시부터 나와 준비를 하는 모습에서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은 오는 사람 떠나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자칫 한눈을 팔면 일행에서 이탈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동안 하늘길이 막혀 있다가 기내에서 오랜만에 기내식을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깜박 졸다보니 비행기는 벌써 연길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38명의 단체 인원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서로서로 협조가 있어야지 시간이 단축되고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차질이 생긴다. 우리는 평균나이 75세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잘 지켰다.
연길공항에서 ‘회장단 백두산 견학’ 현수막을 펼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실 우리 일행은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현수막 앞에서 사진 기록을 남기려 현수막을 준비했다.
그러나 정작 백두산 천지에서는 한 번도 현수막을 펼치지 못했다. 중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원망은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연길 시내로 접어든 일행 모두는 깜짝 놀랐다
간판은 중국어로 쓰여 있지만 하단에는 모두가 한글로 표기되어 있어 “여기가 한국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알고 보니 이곳이 ‘연변 조선족 자치구’였던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주무대였다. 말로만 듣던 북간도 만주벌판을 한참 달려 두만강 중조접경지대에 도착했다.
두만강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10미터 강 건너에는 두 동강이 난 한반도의 북한 땅이었다. 이북에 고향을 둔 어느 회장님의 눈물짓는 모습을 보고 모두는 지친 역사의 한에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을 느꼈다.
여기서도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에 준비한 현수막을 펼치지 못했다. 차로 이동하면서 차창 밖으로 선구자 노래에 나오는 일송정과 해란강을 보면서 독립운동가의 위대함과 당시의 처절함을 새삼 느끼며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도백하로 달려와 맛있는 저녁 식사 후 내일 서파에서 백두산 천지를 맞이할 설레임에 모두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백두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하여 간절하게 두 손을 모았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백두산에 입산하여 고산화원 중조경계선 경계비를 거쳐 천지를 향해 1400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회장님들의 연령이 많아 무척 걱정을 했지만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어 주면서 85세 최고령 맹 회장님까지 일행전체가 천지입구에 도착했다.
새털 뭉개구름이 살짝 깔리면서 검푸른 천지는 우리 대한노인회 권선구지회 회원 모두를 반갑게 맞이했다.
인산인해 북새통에도 찰칵찰칵 핸드폰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고 천지물에 풍덩 뛰어들 기세로 껑충껑충 청년의 혈기로 한곳도 놓치지 않고 천지의 풍경을 담았다.
“지금 이순간이 인생의 최고”라고 외치며 행복한 미소를 연신 날렸다.
천지에서 하산하고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었다. 우리의 비빔밥에는 못 미쳐도 웃음꽃을 피워가며 아름답던 천지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여 내일 북파산문으로 오를 또 다른 천지를 생각하며 하루일정을 마무리했다.
밤잠을 설치고 일찍 기상 후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북파산문으로 향하는 작은 봉고차에 몸을 싣고 험한 비탈길를 굽이굽이 돌아 드디어 천지입구에 도착했다. 천지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제 서파보다 더 진한 푸른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 그렇게 맑게 우리를 맞이했다.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는 여섯 번을 왔는데 구름에 가려 한 번도 보지못했다고 하는데 대한노인회 권선구 지회 회원들은 6대가 덕을 쌓은 것 같이 처음 와서 한 번에 서파와 북파 천지를 보았으니 그동안 경제발전에 주역인 어르신들에게 보상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의 천지는 워낙 코스가 길어서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사진 촬영은 수월했으며 함박웃음 속에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 주며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이제 천지를 뒤로 하며 하산을 하여 장백폭포에 도착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백두산 중턱에서 바위가 흘러내려 중간을 차단해 장백폭포에 가지는 못하고 입구에서 구경만하고 뜨거운 온천물에 삶은 계란 하나로 허기를 채운 뒤 백두산은 다음을 기약하며 연길 시내로 접어들었다.
마지막 만찬에 지회장인 나는 흥분했다.
연령대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한명 낙오자 없이 백두산을 구경하고 아무 탈 없이 전원 만찬에 참석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건배사에서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외쳤다. 술잔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못하는 술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고맙기도 하고 응어리진 역사가 어른거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밤잠을 설쳤다. 내일이면 입국하며 언제 올지 모를 아쉬움도 남아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같이 눈을 비비고 식당으로 향했더니 벌써 일행 절반이 오순도순 모여 식사하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눈을 좀 붙일까 했는데 온갖 상념과 함께 백두산 천지가 아른거린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권선구 5만여 어르신들 아무 불편함 없이 존경받고 또한 행복한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 지회장으로서 책임감이 앞선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 세계는 한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은 자는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었을 뿐이다.’
“함께 해주신 회장님들! 고마웠고 행복했고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