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조 양 래
할머니 오래 사세요 오래오래
그렇게 부르던 내가 서쪽으로 갑니다
고망주야, 강아지야, 머리 쓸던 할머니 곁에서
기운 가을 햇빛은 얼마나 가득했던가요
할머니 계신 곳도 가을이 있나요
거기서도 짧은 해에 그림자가 길어지고
울적함이 깃드는 가을이 있는가요
그렇다면 절 불러주세요 기운 햇살에
할머니 그늘에 묻힐 테니
절 불러주세요
찬바람에 쫓긴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에
세상 슬픔 더하고
짧은 해에 마음에 가라앉던 그곳에서
할머니, 할머니 발길 쫓아 우리집으로
석양의 들길을 가는 건 얼마나 기쁜 꿈이었던가요
1970년대가 다 기울어 갈 무렵이었다. 서울의 미도파 백화점 갤러리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이중섭 전시회가 있는데 무려 입장료가 오백 원이나 하는 것이었다. 다방서 커피 한 잔이 사십 원 하던 시절에 오백 원은, 가난한 학생에게는 거금이었다. 오랜 망설임 끝에 결심을 하고 라면 오십 그릇의 값을 한 장의 입장권과 바꿨다. 들어가자마자 한 그림 앞에 그만 우뚝 서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이내 한동안 울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4B 연필로 그린 자화상이었다. 그림 속의 한없이 어질고 순한 눈빛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갈 무렵 수원에서 그것과 너무나 닮은 눈매를 지닌 사내를 만났다. 조양래 시인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갑남을녀들이 으레 지니기 마련인 기본적인 영악함마저 없었다. 게다가 시를 쓰는 일 외의 사는 일에는 서툴러도 너무나 서툰 사람이었다. 생계를 위한 업을 제대로 갖지를 못했으니 그 생활의 곤고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지였다. 가난과 질병을 업처럼 짊어지고 살다가 오십에서 육십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생을 등졌다. 요즘의 평균 수명으로 보자면 턱없이 짧았던 셈이다.
위의 시는 그의 시집 『제비꽃』에 실린 ‘가을에’의 전문이다.
‘할머니 오래 사세요 오래오래/그렇게 부르던 내가 서쪽으로 갑니다’ 살아생전 장수를 축원하던 할머니는 더 이상 이 지상에는 아니 계시다. 이미 서쪽 먼 곳으로 가셨다. 시인은 자신도 그 서쪽으로 간다고 한다. 한없이 슬프고 또 슬프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하여 마음이 아리다.
‘고망주야, 강아지야, 머리 쓸던 할머니 곁에서/기운 가을 햇빛은 얼마나 가득했던가요/할머니 계신 곳도 가을이 있나요/거기서도 짧은 해에 그림자가 길어지고/울적함이 깃드는 가을이 있는가요’ 짧은 해에 그림자가 길어지는 가을이다. 할머니가 ‘우리 강아지’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가을, 그 햇살은 눈이 부셨다. 할머니에게 당신이 계신 곳에도 그 기운 햇살이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시인이 가난한 삶 속에서 감당하고 있는 가을은 ‘울적함이 깃드는 가을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렇다면 ‘할머니 그늘에 묻힐 테니’ 자기를 ‘불러주세요’ 한다.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다. 그러나 이 시 어디에도 죽음의 원형상징 중 하나인 ‘시들어 떨어짐’이 없다. 시 전편에는 가을의 햇살이 일렁인다. 그리고 ‘짧은 해에 마음에 가라앉던 그곳’이라고 했듯이 그 햇살은 우리의 마음에 안식을 준다. 그러면서 ‘석양의 들길을 가는 건 얼마나 기쁜 꿈이었던가요’라며 마치 쇠잔한 가을 햇살이 죽음과는 무관한, 어린 시절 아름다웠던 추억의 조각이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며 시상의 문을 닫는다.
회자정리이다. 불변의 법리이다. 그렇지만 이별이 가져다준 우리 몫의 눈물은 항상 따로 있다. 시인이 할머니를 따라서 간 것도 어느새 십 년이 훌쩍 지났다. 그와 막걸릿잔을 기울이던 남문 뒷골목의 선술집들도 다 사라진 지도 오래이다.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가 코 앞이다. 머잖아 가을 저녁이면 그가 느린 걸음으로 찾아들던 남문의 거리에 나뭇잎이 지고 그 골목에도 낡은 건물들이 기운 햇살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오늘 저녁은 그 골목에나 나가 봐야겠다.
조양래(1959~2012)
199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자양(滋養)」 당선
2006년 계간 『시평』으로 재 등단,
2007년 시집 『제비꽃』
2010년경 가난과 지병에 시달리다 해남으로 귀향
2012년 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