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아침묵상] 내 삶을 이끌어준 10가지 말씀(65)

김진홍 목사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후렴)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죄인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나 예수 의지함으로 큰 권능 받아서/ 주님께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손을 든 채로 울면서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온 교회가 은혜 충만한 교회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 날부터 빚 갚는 기적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나는 빚을 갚아야 할 집들을 한 집 한 집 찾아다니며 갚아 주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감동하여 교인이 된 가정들이 여러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빚 갚게 된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 책 한 권을 따로 써도 될 것입니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어떤 일에나 먼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되면 세상일은 물 흐르듯이 풀려 나가게 됩니다.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가장 아쉬움을 느끼게 된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 정신이 부족한 점입니다.

우리 주민들에게 배정된 논은 평균 1정보, 3000평인데 그 넓이로는 열심히 일해 보았자 가난을 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다 농가마다 농기구를 따로 구입하여야 하고 모심는 기계나 논갈이 기계 등을 각 농가가 따로 구입하여야 하니 자원의 낭비가 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생각한 것이 공동체를 이루어 노동력과 농기계와 농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공동으로 구입하여 사용하여야겠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야 경제성도 있고 노동력도 해결되고 매사에 능률적이겠다는 생각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50 세대 단위로 협동농장 형식으로 공동체 마을로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렇게 설교하고 뜻을 모았더니 주민들은 많이 호응하는데 정보기관에서 득달같이 찾아왔습니다.

"김진홍 목사는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15년 형을 받고 일시적으로 집행 정지된 상태임을 명심하시오. 아직 중앙정보부의 관할 아래 감시 대상임을 기억하시오. 50 세대 단위로 협동농장식으로 하는 안은 안 됩니다."

하기에 나는 이해가 안 되어 "무슨 말하고 있는 거요. 내 형 집행 정지와 협동 마을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요." 하고 물었더니 그런 방식이 바로 북한의 집단농장과 같은 발상이란 엉뚱한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세상에 북의 집단농장과 우리가 하려는 협동농장과는 차원이 다른데 왜 그렇게 연관을 시키는 겁니까 하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진홍 목사가 그렇지 않아도 사상적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터인데 북의 집단농장과 유사한 모양으로 운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서울에서 우리와 함께 귀농한 판자촌 가족들을 남양만 간척지 안의 15 마을에 흩어서 살게 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각자 배정된 마을에서 흩어져 살면서 교회와 주민회 조직 활동을 통하여 정착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농사를 지으며 살아보니 역시 공동체 마을을 이루어 협동체제로 살아가는 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란 생각에서 두레마을이란 이름으로 공동체 마을을 따로 세울 생각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마침 남양만에서 서해안 바다가 보이는 목이 좋은 곳에 '봉화산(烽火山)'이란 이름의 야트막하게 모양 좋은 산이 있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