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이 만난사람(5)] “짜장면은 내 운명” 운천스님 이야기

짜장면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깨어있는 '참 승려'"부처님 가르침을 수행하는 데는 정해진 길이 없다"“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 않고 찾아가는 승려로 살고 싶어”

<대담 김충영 논설위원> 

사찰경내를 산책하는 운천스님. 
사찰경내를 산책하는 운천스님. 

석운천(일명 짜장스님) 스님은 1962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서 7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 매산초교를 졸업하고 수원광명고등공민학교, 삼일상고를 졸업했다. 이후 형님이 운영하는 보일러대리점에서 10여 년간 일했다. 

이 무렵 삼일상고 동기회장을 맡았다. 당시 이병희 국회의원이 삼일상고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어 이병희 국회의원 사무실을 자주 드나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이런 인연으로 임창열 도지사 선거와 심재덕 수원시장 선거사무를 돕기도 했다. 

운천스님은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기도 했지만 1988년 법운스님과 만난 뒤 불교에 흥미를 느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 깊이 고뇌할 때였다.

그러다가 1998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출가했다. 계(戒,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할 행동 규범)를 받고 2000년 중앙승가대학에 입학해 4년간의 수행을 통해 승려로 거듭 태어났다. 이후 중국에 건너가 절강사범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마친 뒤 종교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공부를 마치고 전북 남원의 천년고찰 선원사 주지로 부임해 10년간 머물렀다. 

장병들의 짜장시식 모습. (사진=운천스님)
장병들의 짜장시식 모습. (사진=운천스님)

선원사 주지로 있던 어느 날, 짜장면 공양을 하면서 어린 시절 제일 맛있는 음식이 짜장면이었던 옛 추억이 생각났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부모님이 사준 짜장면이 최고였던 순간이 떠올랐던 것이다. 법회에 온 인근 군부대 장병들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짜장면이라고 했다. 

어느날 처사님 한 분을 만났는데 그는 2007년 충청남도 태안군 인근 해상에서 선박충돌로 인해 다량의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봉사자들을 위해 1000명 분 짜장봉사를 했다고 했다.

그는 운천스님이 짜장에 관심이 많은 것을 보고 함께 봉사할 것을 권유했다.

이 때 운천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중생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헐벗고 굶주린 이들과 마음이 공허한 이들에게 짜장면이야말로 사랑을 채우는 가장 좋은 법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처사와 중국집을 운영하는 신도의 도움을 받아 짜장 봉사에 나섰다. 

짜장 만들기가 숙달되면서 선원사가 독자적으로 봉사에 나섰다. 이렇게 시작된 짜장봉사는 입소문이 나면서 스님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 

이 때 운천스님은 ‘짜장 스님’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 

이후 짜장면 봉사는 이어졌고 짜장 봉사가 소문나면서 스님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 소규모로 할 때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이같은 봉사가 한 달에 10여 차례가 넘으면서는 식재료와 봉사자, 조리 장비 등 여러가지 한계에 봉착했다. 직접 재배한 돼지감자로 차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짜장면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돼지고기를 넣어야 했는데 스님이 만드는 짜장면에 고기를 넣을 수가 없어서 콩으로 만든 콩고기를 넣었다. 예외도 있었다. 사고 현장이나 군부대 짜장 봉사 때는 돼지고기를 넣기도 했다. 

<다음은 “부처님은 늦은 나이에 왜 나를 승려로 부르셨을까”하는 생각에 빠진다는 운천스님과의 일문일답> 

▲ 스님과 짜장면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는가?

- 짜장면은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짜장면 봉사를 하는 것은 승려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군부대와 관공서, 병원, 복지관, 보육원, 경로당, 무료급식소, 전통시장, 사찰, 종교행사, 장애인 시설, 종교를 막론하고 나의 짜장면을 원하는 곳이면 전국 어느 곳이든 찾아갔다. 15년 동안 1200회, 130만 그릇을 만들었다. 가장 보람 있는 봉사는 어르신들에게 짜장면을 대접하는 것이다. 아버님이 5세 때 돌아가셔서 노인들만 보면 아버님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운천스님이 직접 키운 대파를 트럭에 싣고 있다.
운천스님이 직접 키운 대파를 트럭에 싣고 있다.

▲ 15년간 짜장 봉사를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 불러주는 곳이 많아지니 즐거운 반면 식재료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식재료를 마련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고, 식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양파, 고구마, 호박, 감자, 대파, 마늘 등을 직접 재배함은 물론 제철에 나는 재료를 건조하여 사용하는 방식을 쓰면서 원가를 줄였다.

한편으로는 지리산 자락의 돼지감자를 채취해 차를 만들어 판매해 재료비를 조달하는데 보태기도 했다. 

지난 9월 5일 영통종합사회복지관에서 온면을 봉사하는 운천스님. (사진=김충영)
지난 9월 5일 영통종합사회복지관에서 온면을 봉사하는 운천스님. (사진=김충영)

▲ 수원 출신이어서인지 유독 수원지역의 봉사 횟수가 많았는데.

- 2013년 1월말 장안구 율천동에 기거하는 어르신 200여명을 위한 짜장 봉사가 율천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진행됐다. 짜장소스에 들어갈 채소를 다듬은 뒤 면을 뽑아야 한다. 쫄깃쫄깃한 식감을 위해서는 밀가루 반죽을 여러 차례 기계에 겹쳐서 넣어야 했는데 반죽을 밀어 넣는 과정에서 손가락 3개가 빨려들어가 으스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봉합수술 후 보름 넘게 고생을 했는데 이 때에도 짜장 봉사를 못해 어르신들을 못 만나는 것이 안타까웠다. 

▲ 짜장봉사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나?

- 노숙자, 장애인, 어르신들이 짜장면을 먹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을 때와 노인들이 짜장을 들고 흐뭇한 표정을 지을 때다. 그리고 든든한 후원군이 나타났을 때다. 수원 이목동에 있는 정신장애시설인 바다의 별에서 국민은행 화서동지점장이 직원들과 함께 짜장 봉사를 나왔는데 제 모습을 보고 “짜장면 2만 그릇을 후원한다”고 했을 때 지금까지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천스님이 네팔 학교재건프로젝트 행사를 펼치고 있다.
운천스님이 네팔 학교재건프로젝트 행사를 펼치고 있다.
네팔 ‘선원사초등학교’ 준공식에서 참석자들이 현지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네팔 ‘선원사초등학교’ 준공식에서 참석자들이 현지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 지금까지 국내를 넘어 외국에서도 봉사를 했다고 하는데?

- 봉사는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저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 불문하고 찾아 나선다. 2014년에는 식수부족으로 고통을 겪는 캄보디아에 우물 40여 곳을 파줬고, 변변한 교사(校舍) 없이 흙바닥에서 공부하던 네팔 룸비니 오지마을 어린이들에게 사비와 후원자들의 성금으로 스리칼리마이 ‘선원사초등학교’를 지어주고 '영화초등학교'도 건립해 문을 열었다. 

▲ 몸담고 있던 대한불교조계종에서 탈종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 그동안 큰 재난 사건사고가 발생한 곳, 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를 막론하고 현장에 뛰어갔다. 2017년 말 발생한 포항지진현장을 찾아가 짜장봉사를 하면서 종단에 서운함이 있었다. 그래서 20년간 몸담은 조계종을 떠나기로 일생일대 과단을 내렸다. 종단을 떠난다는 것은 혈혈단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냥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불제자는 부처님 가르침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고, 대중과 아픔을 같이 나눠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 무엇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나?

-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존재하지만 작은 나눔과 봉사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저는 짜장면 한 그릇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희망을 전하고자 했다. 여러분도 주변의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길 권한다. 함께 나누고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길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을 계속 찾아 봉사할 생각이다. 짜장에 국한하지 않고 노인들이 좋아하는 온면, 밀면, 연쌀국수 등으로 확장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현재 국내에는 3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다. 이중에서 불교가 국교인 네팔이나 태국, 캄보디아 등의 노동자들이 정신적으로 위안을 받도록 세계화합불교종단을 설립, 이들의 종교활동을 돕는 일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