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동 남창초등학교 앞 행궁로 2층에 경기도 무형유산 제31호 경기민요 이수자 박승순 명창(여, 69세)이 운영하는 (사)한국경기소리보존회 수원시지부(팔달구 행궁로 44)가 있다.
박승순 명창의 소리로 ‘수원화성 아리랑’을 들어봤다. ‘아리랑 아리랑 수원화성 아리랑/ 에라 좋구나 에라 좋구나/ 팔달산 올라보니 서장대가 좋구나/ 동서남북으로 사대문 성곽 벽/ 그 모습이 경이롭구나/ 수원 팔경 자랑스러운 정조대왕 능행차가 간다’라는 가사가 세마치장단에 실려 구수하면서도 청아하게 들렸다.
경기민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박승순 명창은 40년 노래 인생을 풀어놓았다. 1984년 국가 무형유산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였던 고 안비취 선생에게 경기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안비취 선생은 박승순 명창을 지도하면서 “왜 이제야 왔냐”라며 첫눈에 타고난 재능을 알아봤다고 한다. 이후 국가무형유산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였던 전숙희 명창에게 배웠고, 경기도 무형유산 제31호 경기소리 보유자 임정란 명창에게 배웠다.
경기민요는 1975년에 국가 무형유산 제57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민요 여성 3인방이었던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명창이 경기민요 보유자로 활동했고 현재는 이춘희, 김혜란, 이호연 명창이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경기민요는 굿거리장단, 세마치장단, 타령장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색이 맑고 깨끗하며 경쾌한 편이다.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경기민요는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면서 충청도 북부 일부와 강원도지방 일부에서 전승되며 경기잡가와 경기민요를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경기민요는 통속민요를 가리키며 노랫가락, 청춘가, 창부타령, 태평가, 한강수타령, 풍년가 등으로 전문적인 소리꾼이 부른다.
경기잡가는 앉아서 부르는 좌창과 서서 부르는 입창이 있는데 경기좌창은 경기 긴 잡가를 말한다. ‘긴 잡가란 비교적 느리게 부르는 노래를 의미한다. 가곡이나 가사는 정가(正歌)라 하고 잡가는 속가(俗歌)라고 한다. 오늘날 속가 중에서도 앉아서 부르는 긴 형식의 노래를 잡가라고 한다.
경기잡가 중에서도 느린 장단으로 된 12잡가를 긴 잡가라 한다. 12잡가는 산천 경치를 노래한 유산가, 판소리 춘향가 사설 중에서 일부 내용으로 구성한 소춘향가, 집장가, 십장가, 형장가, 판소리 적벽가와 비슷한 적벽가, 판소리 흥보가와 비슷한 제비가 등이 있는데 판소리 사설과 비슷하지만, 판소리 곡조는 아니고 사설만 따온 것이다. 서민적인 인정, 사랑 등을 노래한 평양가, 출인가, 방물가, 달거리, 선유가 등이다.
대부분의 잡가는 선율악기 반주를 하지 않고 장구 장단 반주로 노래를 한다. 경기 특유의 율조로 서정적인 긴사설로 조용하고 은근해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경기민요를 들으면 구성지기도 하지만 밝고 섬세하며 우아하고 청아한 느낌이다.
박승순 명창은 처음 소리를 배울 당시에 주변으로부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고 한다.
우연히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고 이것도 인연인가 싶어 소리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연은 세종대에 절대음감을 가졌던 음악가였다. 당시에 불완전했던 악기 조율을 정리하고 악보의 필요성을 인지해 악보와 악곡을 정리하고 악기를 개량하고 발명했다. 편경을 제작하고 직접 만든 12율관에 의거 음률의 정확성을 기하고 세종과 함께 궁중음악 발전을 이끈 인물이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박승순 명창은 소리를 배운지 몇 년 만에 시조 경창 대회, 경기민요 전국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는 등 명창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경기도 무형유산 제31호 경기민요 전수자가 되어 적극적으로 후진 양성을 하면서 명창으로서 공연과 봉사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박승순 명창은 “저는 수원 무형유산이 되고 싶어요. 개인적인 욕심은 없어요. 무형유산이 되어야 후배들도 이수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그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수 있어요. 수원지역 민요를 발굴하고 제작하는 게 가능해져 수원 민요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수원 민요를 통해 수원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어요.”
경기도 무형유산 제31호 경기민요 이수자로서 수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수원의 정체성을 찾아 ‘수원화성 아리랑’을 만들게 되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돌을 뜨던 일, 돌을 나르던 일, 성벽을 쌓던 일, 수원천 개울을 치던 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일을 하는 데는 노동요가 있었을 겁니다. 이를 수원 민요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수원의 정체성 확장을 위해서도 수원화성 축성 관련 민요의 창작은 필요할 것 같다. 이름 없이 축성에 참여한 많은 석공의 애환, 성벽을 쌓고 개울을 치며 부르던 노래가 어떤 민요로 탄생 될지 기대가 된다. 수원 민요 하나하나가 발굴되고 창작되어야 ‘수원화성 아리랑’이 완성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