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수원 詩, 수원 詩人'(24)] 홍순영 '상추 아래 무릎을 꿇고'
상추 아래 무릎을 꿇고
홍 순 영
봄, 여름 내내 상추를 따 먹었지요
그동안 상추를 앉은뱅이로만 알았지 뭐예요
따고 또 따도,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새잎을 밀어내는 상추 때문에
나, 사실 상처 받았어요
끝까지 가보겠다는 듯
땀을 뻘뻘 흘리며 꽃대 올리는 상추를 보고
나, 눈물이 났다니까요
상추꽃이 하나둘 작은 입들을 벌렸다 오므리면
상추 주변으로 노을이 펴요
이제 나의 숙제만 남았어요
씨앗 받는 일
두 손을 깨끗이 씻어야겠어요
이처럼 거룩한 생을,
제가 언제 또 받아 안아보겠어요
펄펄 끓는 태양 아래 무릎을 꿇고
오늘, 상추의 온 생애를
두 손으로 받아 모셔요
법이니 관습이니 하는 규범을 떠나서 서로 지켜야 하는 도리라는 게 있다. 비단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소 스쳐 지나는 아주 작은 숱한 물상에게도 그 도리는 유효하다. 위의 시는 올해 유월에 ‘푸른사상사’에서 펴낸 홍순영 시인의 시집 『귤과 달과 그토록 많은 날들 속에서』에 들어 있는 ‘상추 아래 무릎을 꿇고’의 전문이다. 시집을 받아 읽으며 줄곧 매달리게 된 생각이 ‘관계’와 그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서로의 ‘도리’였다.
아마 시인은 조그만 텃밭을 가꾸었나 보다. 그 밭에 상추도 심어 봄과 여름 한철 식탁에 올리기도 하고 이웃과 나누기도 했으리라. 사소한 일상에서도 시인은 무심코 지나지 않는다. ‘따고 또 따도,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새잎을 밀어내는 상추 때문에/나, 사실 상처 받았어요//끝까지 가보겠다는 듯/땀을 뻘뻘 흘리며 꽃대 올리는 상추를 보고/나, 눈물이 났다니까요’ 시인은 ‘상처’ 혹은 ‘눈물’이라고 하였지만 실은 강한 ‘교감’의 나눔이다. 앞서 언급한 관계 속에 형성되는 물상에 대한 도리에 바탕을 둔 반응이다.
‘상추꽃이 하나둘 작은 입들을 벌렸다 오므리면/상추 주변으로 노을이 펴요’
상추 주변으로 노을이 핀다고 했다. 작은 텃밭이지만 한 해의 상추 농사가 끝나감을 알린다. 이어 ‘앉은뱅이로만 알았’을 수도 있었던 상추에 대한 도리를 생각하게 된다. 그 일은 상추의 씨앗을 받는 일이다. 우리의 거의 모든 선택에서 흔히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곤 한다. 상추 씨앗을 받는 일이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작은 씨앗들을 받고 모아서 말리고 검불을 날린 다음 실한 놈으로 골라 보관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품이 든다. 다음 해 봄에 시장에 나가 씨앗을 사서 뿌리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은 시인에게 봄과 여름 한철 베푼 상추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믿는다. 시인은 상추씨를 받기 위해 ‘두 손을 깨끗이 씻’는다. 그 정결함이 작은 씨앗 한 톨이지만 그를 위해서 갖추어야 하는 마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오늘, 상추의 온 생애를/두 손으로 받아 모’신다. 라며 경건한 마음으로 씨앗을 모은다.
그렇다. ‘이처럼 거룩한 생을,/제가 언제 또 받아 안아보겠어요’라고 하지 않았는가. 스쳐 지나기 쉬운 일상 속의 작은 일에서 받는 벅찬 감동이 우리네 삶이 메마르지 않게 하는 힘이다.
홍순영 시인
한신대 대학원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우산을 새라고 불러보는 정류장의 오후』
『오늘까지만 함께 걸어갈』
『귤과 달과 그토록 많은 날들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