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박 설 희
‘괴다’라는 말은 ‘사랑하다’라는 뜻
거울처럼 비추다가
같이 출렁거리기도 하는
내 속에 네가 온통 괴어
너를 내뿜는 것
너를 일렁이는 것
속속들이 썩더라도
끝내
품는 것
석양빛에 환히 불타오르듯
어두워질지라도
우리의 옛노래들을 볼라치면 심심찮게 ‘괴다’라는 동사를 볼 수 있다. 여요(麗謠) 청산별곡의 5절을 보면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라고 했다. 굳이 지금 우리가 쓰는 말로 고치면 ‘어디에 던지려던 돌이었느냐 누구를 맞히려던 돌이었느냐/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이 맞아서 우는도다’ 정도가 될 것이다. ‘괴리’는 ‘사랑할 사람’이라는 뜻이다.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강의할 때 늘 하는 이야기가 왜 하필이면 ‘사랑하다’라는 말의 우리의 옛말이 ‘괴다’였는가, 그리고 그 말의 또 다른 깊이에 관해서이다.
어찌 보면 사랑은 감사하고 기뻐하고 주고 싶어 하는 긍정적 감정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 영혼의 항아리에 앞에서 말한 감사, 기쁨, 헌신 외에도 때로는 미움과 원망 그리고 눈물까지 괴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경지인지도 모른다.
저수지 둘레를 걷던 시인의 사유는 ‘괴다라는 말은 사랑하다라는 뜻’이라고 ‘괴다’라는 말로 산책의 길라잡이를 삼는다. 본래 괴어있는 물의 원형상징 중 하나는 자아성찰이다. ‘거울처럼 비추다가/같이 출렁거리기도 하는’ 그 물에 자신을 비추어보다가 그 속에 괴어있는 비가시적 실체에 주목한다. 사랑이다.
‘속속들이 썩더라도/끝내/품는 것’ 그렇다 그것이 사랑이다. 내 영혼 안에 괴어있는 그 모두를 끝내 품는 것이 사랑이다.
‘괴다’이다.
우리를 둘러싼 시간이 ‘석양빛에 환히 불타오르듯/어두워질지라도’ 그것을 내 안에 괴게 하여 삭히는 것이 사랑이다.
박설희 시인
2003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가슴을 재다』
현) 경기민예총 부이사장